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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찮은 「안전 홍보」(1000자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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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찮은 「안전 홍보」(1000자춘추)

입력
1994.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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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가스가 폭발한 현장은 마치 전쟁의 참화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연상시켰다. 갈가리 찢긴 채 널브러진 아이들의 교과서, 타다가 만 이불들, 선명한 침대 머리맡의 금속장식, 그래도 졸졸 흘러내리는 국수가락 같은 수돗물…그폐허에서 아직도 남아 있을까 싶은 금붙이 따위를 찾는 여인네들의 머리에는 엊그제 꽂은 것인 듯, 상중임을 표현하는 흰 리본이 매달려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말도 꺼내기가 민망할 만큼 폐허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탄 택시의 운전기사는 여전히 곡예하듯이 차선을 바꿔 요리조리 차를 몰아가면서 이제는 언제 아스팔트가 벌떡 일어설지 그저 운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면서 차라리 명랑하게 웃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에게도 그의 명랑한 웃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는 정부의 홍보와 우리는 심심찮게 마주친다. 폐기물을 저장하는 것도 완벽하다고 한 탤런트는 자랑하고 있다. 그후에도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바람에 벌써 잊혀진 이리역의 대폭발 참사. 그 원인 역시「무심코」켠 촛불 네자루에 있었다는 말이 기억난다. 아현동의 가스 폭발은 그 일대를 폐허로 만들어 버리고 끝이 났지만, 이리역의 폭발사고 역시 이리역 주변을 초토화시키고 끝나버렸지만 원자력 발전소에서 누군가 「무심히」일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며 어떤 사후 보상으로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정부의 홍보가, 어떤 탤런트가 나와 부드럽게 웃는다 해도 먹혀들어가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들을 너무 많이 겪어버린 탓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자기네 고장을 살릴 방도가 없어서 핵폐기물을 저장하겠다고 나선 강원도 어느 폐광촌 사람들은 그래서 더욱 우리를 가슴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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