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은 문자 그대로 참으로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그 가운데는 한국인의 추악한 모습을 전세계에 송두리째 드러내 보인 사건들도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한국은 세계속의 한국이 되고 있는데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 한국인은 과연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까. 역설적으로 말하면 이제 우리는 세계를 향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물어볼 만큼은 성숙했는지 모른다. 바야흐로 「세계화」가 연말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무릇 국정의 방향을 결정하는 정책개념이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평균적인 국민이 그 개념의 의미와 결과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지난날 박정권시대의 근대화개념은 엄밀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지만 산업화라는 뚜렷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고 산업화에 성공하면 그 결실이 국민 각자에게 돌아온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그래서 근대화정책은 민주화에 역행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도 결과적으로는 근대화를 반대한 사람까지도 이익을 공유하도록 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세계화는 근대화로부터의 단절이 아니라 그 연장선 위에 있다. 근대화없는 세계화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근대화가 국정목표를 산업화에 두었다면 세계화는 산업화한 국가의 구조를 국경없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개혁하는 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다.
국제화와 세계화는 동의어나 유사어로 혼용되고 있으나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설명이 다를 수 있다. 국제화가 바깥으로부터 주어진 추세나 압력에 적응하는 행위라면 세계화는 세계인의 요구와 보편적 가치에 맞게 자국의 인적·제도적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이다. 보다 좁은 의미로 단순화하면 세계화가 목표개념이라면 국제화는 수단개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볼 때 이번에 정부가 세계화의 준비로 정부조직의 개편을 단행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야당도 이미 그 조직개편을 원칙적으로는 수긍하고 있는 터이다. 김영삼정부의 초기개혁에서 나타났던 「인치」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이와 같은 제도개혁과정에서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에 걸맞는 인간이 현실을 직시하면서 운용의 묘를 살리지 않으면 빛좋은 개살구가 되고 만다. 부디 이번에는 역사에 부끄러움이 없고 능력있는 인재들을 고루 발굴하여 제도개혁의 효용을 최대한 발휘해 주길 바란다.
정부가 내놓은 세계화개념이 국력신장과 국민통합을 위한 유효한 조직상징이 되기 위해서는 그 선행조건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구조적 비리, 부패부터 도려내야 한다. 원래 세계화는 기업경영에서 나온 말이지만 보통사람들은 세계화를 상품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상품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그 상품을 만드는 나라의 인간과 제도에 대한 세계적인 신뢰이다. 우리는 성수대교참사에 실망한 세계의 이목이 사건의 뒷마무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산업화의 취약점을 간파하고 있었지만 성수대교참사로 인하여 우리는 우리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아시아 여러 나라들로부터도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국민의 혈세를 도둑질해 온 공직자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도사리고 있고 그 가운데는 청렴을 가장하고 모범공무원으로 대접받은 사람도 있다니 다시 한번 인간의 자기기만능력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무책임의 체제로는 세계화는 어림도 없다. 정부는 세계화를 비웃는 성수대교사건과 세도사건등을 미봉책으로 수습해서는 안되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끝맺음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국민이 믿는 정부라야 세계화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며 세계인의 상식과 신용을 저버린 세계화는 공허할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이번 정부조직개편에서 환경처를 부로 승격시킨 것은 좋은 출발이다. 세계화가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공동체이미지를 수반하는 것이라면 환경문제야말로 우리의 세계화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화와의 관련에서 보면 문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세계화의 궁극적 목표는 결국 우리 문화의 세계화에 있기 때문이다. 환경이 인간과 지구를 연결시키는 보편적 가치라면 문화는 민족의 개성을 세계적 보편에 연결시키는 정신적인 힘이다. 국제사회에서 다른 나라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대체로 경계의 대상이거나 위협이 되게 마련이지만 세계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삶의 질은 좋은 환경과 문화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
세계화는 들뜬 기분으로 외치는 일회성 목표가 아니라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일 것이다. 이처럼 세계화는 바깥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고려대교수·한국평화연구원장>고려대교수·한국평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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