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 젖은 삶 진지하게 돌아보기 가벼움이 이 시대 젊음의 특성이라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리는 때에, 신진작가 윤대녕의 단편「배암에 물린 자국」(「창작과 비평」겨울호)과 같은 진지한 소설을 만나면 반갑다. 거기에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랜 물음에 부심하는 고뇌가 있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가를 묻는 힘겨운 모색이 있다. 이처럼 문학의 고전적인 물음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야말로, 역량있는 젊은 작가라면 마땅히 맡아야할 몫이다. 이 작품을 가득채운 잔뜩 충전된 언어들은, 비록 거칠고 미숙하게 보일지라도, 젊음 특유의 절절함과 생명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겉보기에 이 소설은 한 청년이 동네 뒷산에 올라갔다가 뱀에게 물린 사건의 전말을 기록하고 있다. 산길을 걷고 자연과 농촌풍광을 접하는 재미로 산을 자주 오르던 화자는 어느 가을 풀섶에서 독사에 물린다. 사경을 헤매다 회복된 화자는 증오심과 복수심으로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 뱀을 찾아 주변을 뒤지고 다닌다. 그러나 그 뱀은 찾을 길 없고, 대신 꽃뱀 한마리를 가까스로 잡지만, 놓아주고 만다. 뱀들이 동면에 드는 겨울이 오자 화자는 자기를 문 뱀을 한번이라도 만나고 싶은 기묘한 감정을 느낀다.
물론 이러한 줄거리가 전부는 아니다. 뱀에 물린 사건의 전말이 화자의 삶전체, 삶의 방식, 태도와 관련됨으로써 비로소 이 작품에 깊은 도덕성이 실리게 되는 것이다. 뱀에 물린 후 화자의 마음에 일어나는 격렬한 감정과 그 감정에 휘둘리는 행동은 무심하게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산중 농부 부부의 삶과 대조된다. 뱀은 어느새 화자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독소가 되고, 이처럼 내면화한 뱀은 마음에서 일어난 일을 두고 타인을 탓하고 괴롭혀온 지난 삶을 반성하게 만든다.
그러나 마음 속의 뱀이 단지 다스려야할 번뇌의 비유만은 아니라는데 이 작품의 매력이 있다. 평정한 마음과 무위의 자연이 주는 「그윽함과 넉넉함」을 인정하면서도 뱀으로 하여 마치 「원시 밀림의 병사」처럼 「시퍼렇게」 살아숨쉬던 날들의 기억도 새삼스러운 것이다. 뱀과의 만남이 부추긴 욕망의 길은 비록 덧없을지라도 삶의 온갖 열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땅속 깊이 들어가버린 뱀을 간절하게 그리는 화자의 마음을 있는대로 드러냄으로써 작품이 단순히 도덕주의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다.
이 작품에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언어사용도 그렇지만 구성에서도 과장된 면이 있고 이것이 작품을 다소 인위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사적인 삶의 문제들이 부각되고 있으며 시적인 정취가 강조된 반면, 공적이고 사회적인 삶의 양상은 괄호쳐두고 있는 점도 걸리는 대목이다. 그러나 어찌 한 단편에서 모든것을 바라겠는가?<문학평론가·덕성여대교수>문학평론가·덕성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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