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움직임이 진보와 화해를 향하여 가속화하고 있는 오늘 우리의 정치현실은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 합리화로 상징되는 근대적 질서를 극복하고 초정밀, 초고속시대를 추구하는 선진국의 행정과 정치개편은 아직도 합리화를 이룩하지 못한 우리의 정치담론 수준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사회학자이며 경제학자인 막스 베버에 의하면 『선출직 공직자는 국민으로부터 뽑혔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갖추고 있으나 임명직 공직자에 비하면 자질면에서 정밀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세계화시대 지방화시대의 급변하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치적 현실이 이에 대한 체계적 준비와 정밀한 대책의 마련보다는 기존의 담론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에 대한 한가지 설명이 될 것이다. 내년이 되면 지방 정치인들이 대거 등장하게 될 것이다. 중앙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현직 지방의원들의 대체적 성향에 비추어 본다면 지방화시대는 선출직 공직자의 수가 늘어난다고 하여 반드시 열리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우리의 정치문화수준이 다분히 소모적 정쟁에 머물며, 생산적이고 진취적이지 못한 이유를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 찾는다면 다음 세가지가 될 것이다.
첫째, 우리의 정치사회에는 아직도 힘의 논리가 가장 우세하게 자리잡고 있다. 힘은 원칙의 제시와 논리적 설득을 앞선다. 힘에서 밀린 쪽은 힘으로 맞대응하여 대화를 통한 공존의 길은 멀어져 간다.
둘째, 정치엘리트를 선출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 현재와 같이 지역대표성이 과도하게 강조되는 방식에서는 남의집 혼상사에 기웃거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업무인 것처럼 되는 현실을 나무라기만 할 수도 없게 되어 있다.
셋째, 정책과 비전을 가지고 정치인이 경쟁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열심히 경쟁하는 것은 당수뇌부에 대한 충성과 선거구민들에 대한 바지런함이다. 정치인의 식견을 적절히 평가할 수단이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12·12 정국과 관련하여 정치인들이 국가적 과제와 정파적과제를 혼동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과거를 청산하고 힘을 합쳐 미래를 향하여 나가는 것이 국가의 과제일 것이다. 그 청산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합리적으로 도출하고 국사를 의논하는 것이 정치인의 경쟁력이며, 각 정파의 이해가 언론에 불거져 나오는 것은 우리정치의 구태이다.
우리의 정치문화가 보다 진취적이며 생산적이 될 수 있도록 제도적·담론적 수준의 진정한 정치개혁이 있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한 정치인의 맹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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