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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새적 「종교국가주의」/앤터니 루이스 미칼럼니스트(해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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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새적 「종교국가주의」/앤터니 루이스 미칼럼니스트(해외칼럼)

입력
1994.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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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방의 주요지도자들이 냉전이후 국제사회가 직면한 도전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처절한 내전의 한 가운데에 있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의 코소보병원에서 일했던 소아과 의사 에스마 체세비치박사이다. 그는 여성의 몸으로 포탄이 떨어지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와중에서 묵묵히 인술을 베풀다 저격병의 흉탄에 중상을 입었다. 1인치만 총알이 빗나갔어도 심장이 관통될 뻔했다. 다행히 그는 동료들에 의해 사라예보로부터 미국의 보스턴으로 긴급 후송돼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는 지난 18일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몸이 좋아졌다며 화약냄새가 끊이지않는 보스니아로 돌아갔다. 그는 보스니아내전이 얼마나 소중한 서방의 가치체계를 위협하고 있는지 일깨워주었다.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54세의 이 의학박사를 왜 죽이려하는 것일까. 바로 종교때문이다.

 그는 회교도이다. 하지만 그는 회교도 국가의 출범을 원하지 않는다. 인종과 종교가 혼재하고 있지만 조국인 보스니아를 소중히 여기고 있을뿐이다. 종교가 다르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그와 그의 가족들이 없어져야 한다는 게 세르비아계의 논리다. 그들은 순수한 세르비아계 국가를 원하기 때문이다.

 세르비아계의 이같은 논리는 곧 서방국가들에 대한 도전이다. 지금부터 50여년전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을 펼친 독일의 나치즘에 대항했던 서유럽과 미국, 캐나다등 서방국가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깨뜨리는 불순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지난 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창설했다. 소련이 주도하는 공산주의로부터 인간존중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된 지금 서방은 새로운 위협에 직면했다. 냉혹하기 이를데 없는 종교적 국가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레슬리 겔브미상원 외교위원장은 「포린어페어스」지 최근호에서 종교적 국가주의는 곧 「자폭」이라고 정의했다.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이 모든 것을 멸망으로 이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서방진영은 냉전종식이후 독버섯처럼 돋아나는 종교적 광신주의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동안 서방진영은 러시아와 독일과 함께 각종 핵문제등에 매달려 왔다. 겔브위원장이 「패망으로 이끄는 전쟁」이라고 단언한 종교내전을 무시해온 것이다.

 겔브위원장은 『종교적 분란을 막지 못할 경우 우리가 중시해온 가치와 국제질서는 붕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종교 분쟁과 이에 따른 대량학살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민주사회의 지지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방진영은 대표적인 종교전쟁인 보스니아의 분쟁을 막는데 실패했다. 세르비아는 보스니아에 군대를 보내 세르비아계를 지원하고 있는데 영국과 프랑스는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하고있다.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조지 부시전미대통령도 보스니아사태에는 뒷짐만 지고있었다.

 그 결과 보스니아내전은 20여만의 사상자와 수백만의 난민을 냈지만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나토는 나토대로 보스니아문제와 관련해 심각한 내분에 휩싸여 있다. 나토는 최근 세르비아계에 대한 공습을 수차례 단행했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아직도 적극적인 사태개입에 반대하고있다. 세르비아계의 보복이 혹시나 현지에 주둔한 자국 군대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판단때문이다.

 서방측은 보스니아사태에 관한한 굴욕적이고 나약한 모습만 보여왔다. 세르비아계의 미사일이 보스니아 대통령 관저빌딩에 떨어지고 크로아티아내에서 출격한 세르비아계 전폭기들은 유엔이 설정한 비하치 안전지대에 공습하는 상황이지만 나토는 말로만 떠들어왔다. 세르비아계 침략자들은 나토의 공습과 경고에 전혀 개의치않고 있다.

 31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보스니아내전은 보스니아 국민뿐만아니라 서방진영의 굳건한 믿음도 위협하고 있다. 인종적 증오와 종교적 국가주의라는 거대한 적은 이제 무사안일에 젖은 우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서방진영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때이다.【정리=이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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