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대 풍미 화신·동명·명성등 유성처럼 국내 기업들은 해방과 6·25 군사혁명 산업합리화조치등 변화의 소용돌이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업의 규모는 50년대, 60년대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커졌으며 기업수도 크게 늘었다. 재계의 앞자리에 올라선 기업의 이름도 그동안 많이 바뀌었다. 매출액산정이 가능한 65년을 기준으로 할 때 매출액 1위기업은 동명목재로 매출액은 2천4백30억원이었다. 지난해 매출액 1위 삼성물산의 매출규모 13조3천2백억원과 비교할 때 28년이 흐르는동안 매출액 1위기업의 매출규모가 55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65년 매출순위 1백대기업내에 들던 기업중 오늘날까지도 1백위안에 들어있는 기업은 16개뿐이다. 60년 10대재벌로 자리하고 있던 그룹중 삼호 개풍 대한 동립산업 태창방직등은 현재 거의 사라진 상태이거나 뿔뿔이 흩어져 다른 기업으로 넘어갔다. 통계연감에 나타난 기업수도 61년 1만5천9백개에서 91년 7만4천1개(광공업체)로 30년사이 4.7배 늘어났다. 건설업과 크고 작은 서비스업체까지 포함할 경우 최근의 기업수는 10만개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수많은 변화를 거쳐 자리매김하고 있는 국내 재계의 판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방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해방직후 재계를 좌지우지했던 기업인은 태창광업의 최창학, 화신의 박흥식, 대동광업의 이종만, 대한물산의 김룡성, 천우사의 전택보등이다. 이들은 그러나 해방과 함께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신흥기업인들에게 급속히 밀려 오늘날에는 대부분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역사속으로 묻혔다.
해방이 되자 가장 먼저 두드러진 활동을 하기 시작한 기업은 삼성과 현대. 대구와 마산등지에서 양조장과 정미소등을 운영하던 삼성의 이병철이 48년 11월 서울에 삼성물산공사를 차리고 무역업에 뛰어들었으며 현대그룹의 정주영은 50년1월 현대건설을 설립하면서 근대식 경영을 시작했다. 삼성그룹은 특히 설립직후부터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60년도에 이미 국내 최대재벌로 자리잡았다. 60년대의 10대그룹은 삼성을 필두로 삼호 개풍 대한 럭키 동양 극동 한국유리 동립산업 태창방직등이다. 이후에도 삼성은 꾸준하게 국내 재벌랭킹 수위권을 지키며 오늘날까지 국내 최대 재벌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대나 럭키금성 대우 선경 쌍용 한진 한화등 오늘날 10대재벌을 형성하고 있는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국내 재벌로의 위치를 갖추게 된 것은 70년대 후반부터. 이들 그룹은 무역 건설 섬유 전자 화학 운송등 각기 다른분야에서 독자적인 경영을 하면서 터를 잡아 꿋꿋하게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일어섰다. 특히 현대그룹은 50년대 전쟁복구사업과 70년대 고속도로건설사업 및 중동진출, 80년대 조선 중공업, 90년대 자동차등을 주축으로 국내에서 가장 탄탄한 제조업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활짝 피었다가 갑자기 시든 기업이 있는가 하면 채 피어나기도 전에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져간 기업들도 적지 않다. 기업의 몰락사 이면에는 경영부실이나 가족간 경영분쟁등이 도사리고 있었으며 정치적인 소용돌이속에서 희생양이 된 기업들도 적지 않아 한국적 기업성장의 명암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재계의 제일 앞자리에서 가장 화려하게 자리잡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몰락해 버린 기업으로는 동명목재가 꼽힌다. 49년 창업한 동명목재는 65년 매출액 최고기업으로 자리잡은 뒤 70년대말까지 재계 첫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합판수출로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동명은 가족간 경영분쟁등으로 80년6월 급기야 간판을 내렸다.
일제시대부터 한국을 대표하던 재벌이었던 화신도 80년대들어 시름시름하다 지금은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처지로 전락했고 수출붐을 타고 한동안 화려하게 등장했던 제세와 율산, 관광사업으로 동양제일을 꿈꾸던 명성, 관광 금융 가방사업등으로 욱일승천하던 영동그룹도 지금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거나 전혀 다른 위치에서 재기를 노리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 80년대초까지 재계 상위랭킹에 자리잡고 있던 국제그룹이 「방만한 경영」과 「정치적 희생」이라는 상반된 해석을 남긴채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됐고 한때 국내 건설업계에 신화처럼 자리잡았던 한양도 주공에 인수되고 말았다.
국내 재계사는 끊임없는 변화의 연속이었다. 최근들어 국내 재벌들은 세계화와 개방화라는 도도한 세계적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생존과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변하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는 치열한 경쟁이 새로운 차원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대세를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21세기 국내 재계판도는 또 다른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이종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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