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검찰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총리. 이 둘의 인연은 참으로 특이하다. 베를루스코니총리는 이탈리아 구정치권의 고질적인 정경유착형 부정부패를 파헤친 검찰의 마니폴리테(깨끗한 손)덕에 하루아침에 재벌총수에서 국가총수로 변신한 인물이다. 2년여의 마니폴리테선풍으로 전후 이탈리아의 구정치권은 철저히 몰락했다. 공백에서 정치지도를 새로 그린 사람이 최대재벌중의 하나인 피닌 베스트그룹의 베를루스코니총수였다. 사정의 회오리속에서 그의 그룹은 정치인과 관리에게 뇌물을 주지 않은 거의 유일한 대기업으로 국민에게 부각됐다. 이 국민적 여망을 등에 업고 정치에 뛰어든 그는 지난 3월 정치입문 2개월만에 총선에서 승리, 세계정치사에도 드문 신화를 창조했다.
결국 베를루스코니총리는 스스로의 노력이라기보다는 시대상황과 막강한 재력이 급조해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대상황은 바로 디 피에트로를 위시한 밀라노의 젊은 검사(치안판사)들이 만들어준 것이다.그러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검찰은 8개월이 지난 22일 베를루스코니에게 밀라노검찰에 출두명령을 내림으로써 지금 그 신화를 스스로 깨려 하고 있다. 세무공무원에 대한 뇌물공여와 관련한 혐의이다. 차라리 악연이라고나 할까.
이탈리아검찰은 베를루스코니의 취임이후 그의 그룹에 대한 수사를 벌여 왔다. 베를루스코니는 검찰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고 비난했다. 검사들은 그러나 법과 양심에 따라 수사할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의 도덕성은 한순간에 땅에 떨어졌다. 야당은 그의 즉각적인 사임을 촉구했다.
베를루스코니가 사임한다면 마니폴리테의 가장 큰 수혜자가 가장 큰 희생양이 되는 셈이다. 한 명의 독립적인 검사가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민주국가요, 법치국가라는 반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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