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코일·냉연강판 등 전유럽에 공급/독기업과 손잡고 “덤핑제소 판막이”/근면·성실 앞세운 현지화경영… 올 매출목표 150억원 독일 뒤스버그에 있는 삼미 크뢰크너 인터내셔널(SKI)은 우리나라의 삼미종합특수강이 유럽으로부터 스테인리스제품의 원재료인 핫코일을 들여오고 냉연강판을 임가공방식으로 유럽에 판매하기 위해 1986년 독일의 크뢰크너사와 합작으로 세운 회사이다.
이 회사는 처음 자본금 1백만마르크로 창립됐으나 이후 계속된 증자를 통해 지금은 자본금 5백만마르크 규모의 회사로 커졌다.
SKI는 제조회사인 삼미종합특수강과 종합상사인 크뢰크너사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설립한 합작회사로 현재 유럽에서 거래되고 있는 스테인리스 핫코일 및 냉연강판의 2∼3%를 공급하고 있다. 94년 매출목표는 2억8천3백만마르크(약 1백50억원). 이 회사가 공급하는 제품은 품질면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영업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마켓셰어를 늘릴 경우 덤핑제소등 현지 유럽기업들의 견제를 받게 될 것을 염려해 공급물량을 늘리는데 신중을 기하고 있다.
영업활동이나 취급하는 품목보다는 다른 관점에서 SKI는 우리의 관심을 끈다. 독일의 공업중심지인 뒤스버그에 자리잡은 이 회사는 독일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문화와 관습이 전혀 다른 현지 독일기업과 함께 일하면서 어떤 갈등을 겪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왔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 회사에는 모두 13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그러나 부사장을 맡고 있는 삼미종합특수강의 김동국차장을 제외하면 사장부터 모두가 독일사람들이다.
6년째 이 회사에서 한국측 대표로 근무하고 있는 김부사장은 독일인 사장 및 부하직원들의 틈바구니에서 고독하게 한국기업과 독일기업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회사인 크라이슬러의 전회장 아이아코카를 닮은 올레그 슬라스덴사장은 빈틈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전형적인 독일 기업인이다. 반면 김부사장은 웃고 떠들며 퇴근후 한잔 즐기기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한국의 샐러리맨 타입이다. 이 두사람이 만나서 빚어내는 절묘한 조화는 우리기업이 유럽시장에 진출하려면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김부사장은 『독일기업의 전반적인 경영철학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단기순이익을 내는데 얽매여 억지로 회계를 짜맞추거나 꼭 필요한 경비를 삭감하는 일이 없다』고 독일기업의 견실함을 평가한다.
미래의 목표달성을 위해 매우 정확하고 엄격하게 현재의 상태를 관리한다는 설명이다. 경영진들의 재임기간이 보장돼 있기 때문에 「단시간내에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근시안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판단이 내려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결정이 내려지면 신속, 과감하게 행동에 옮기고 매사에 원칙이 정해져 있어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도 독일 기업의 장점이라고 김부사장은 말한다.
반면 올레그사장은 『한국과 독일 기업인들 사이에는 경영철학과 기업인의 멘털리티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며 『독일기업인들은 현실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논리적인 접근을 하는데 비해 한국기업인들은 인간적인 접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독일은 규정이나 법에 지나치게 의존해 인간미나 융통성이 부족하고 한국은 정해진 원칙이나 규정보다 변하는 상황에 따라 정책이 흔들리는 경향이 있는데 부단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양자의 이같은 장단점을 조화시켜야 한다는게 올레그사장의 이야기다.
올레그사장은 스테인리스 1개 품목만 27년간 다루었을 정도로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는 경영인인 반면 김부사장은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특수강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뛰어든 팔방미인형이다.
두사람은 이처럼 상이한 배경 때문에 초기에는 갈등이 많았으나 이제는 서로 미운정 고운정이 들면서 신뢰가 쌓여 가장 민감한 직원들의 인사문제까지 긴밀하게 의논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두 사람의 사이가 이처럼 좋아지기까지 김부사장은 숱한 마음고생을 했다.
김부사장은 지금도 올레그사장과 대화를 하기전에 항상 긴장한다. 치밀하고 논리적인 올레그사장과 아무런 사전준비도 없이 대화를 했다가는 백전백패하기 십상이다. 「좋은게 좋은게 아니냐」는 식으로 어설프게 접근했다가는 당장 「왜 좋은게 좋으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독일인들은 특히 한번 「안된다」는 입장을 정하면 이를 번복시키기가 매우 어려워 초반 접근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김부사장은 올레그사장을 만나기 전에 모든 자료를 꼼꼼히 챙기고 나름대로의 논리를 정연히 세우는게 습관화됐다.
이같은 습관이 김부사장의 독일생활을 편하게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대화가 쉬워지고 독일사람들을 이해하는데 한결 도움이 된 것이다. 많은 한국기업들이 해외의 현지공장이나 법인에서 현지인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이같은 접근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김부사장은 힘주어 말했다.【뒤스버그(독일)=김현수기자】
◎SKI 독일부사장/김동국씨/“독근로자들 신뢰감 중시… 즉흥적 일처리 피해야”
11명의 독일인 부하직원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도 김동국부사장은 남모를 고민을 많이 했다. 퇴근후 한잔 걸치며 친해지는 한국의 샐러리맨들과는 달리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퇴근하는 독일 직원들은 접근할 틈을 주지 않았다. 김부사장은 결국 독일샐러리맨들의 취향에 맞게 자신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부하직원들의 신뢰를 얻은뒤 인간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테니스에 자신이 있는 김부사장은 테니스클럽을 만들어 독일직원들과 자주 어울렸다. 독일직원들을 부부동반으로 초대해 한국의 고유음식을 대접하며 동료의식을 키워갔다.
이 과정에서 김부사장은 식성까지 바꿨다. 독일인들이 한국사람들의 입에서 풍기는 마늘냄새에 질색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김치를 포함해 마늘이 들어가는 음식은 일절 입에 대지도 않았다. 이런 노력이 서서히 효과를 발휘해 김부사장은 콧대 센 독일부하직원 11명을 다스릴 수 있게 됐다.
SKI가 들어 있는 12층 건물은 철강 에너지 화학등 여러분야에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크뢰크너그룹의 본부로 독일인 7백여명이 일하고 있다. 유일한 한국인인 김부사장은 이 빌딩에선 유명인사이다. 김부사장의 일거수 일투족은 독일사람 모두의 관심이 되고 있다. 김부사장이 담배를 끊은 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얼굴도 잘 모르는 독일사람이 『아주 잘 결정했다. 담배는 백해무익하다』는 인사를 건넬 정도다.
삼미크뢰크너는 한국과 독일기업이 문화와 관습의 차이를 극복하고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실험무대라고 할 수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