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사전통제 의도” 판단/민자서도 진의·배경탐색 분주 12·12를 둘러싼 일촉즉발의 대치정국에서 김대중아태재단이사장이 야당의 등원을 촉구해 정가에 일대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대여전면전에 나서고 있는 이기택대표와 민주당은 충격을 받은 분위기이고, 민자당도 그 진의와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분주하다.
김이사장의 등원촉구는 뜻밖에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왔다. 발언의 골자는 『야당도 바뀌어야 한다. 세상이 달라진만큼 야당도 대화와 협상에 나서야 한다. 원내에서 문제를 풀어야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여권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영수회담이 필요하다. 정부는 야당당수를 파트너로 삼아 야당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수용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또한 『소대장에 반항한 일등병은 10년징역을 살게 됐는데 12·12주동자는 반성하지도 않고 멀쩡해서야 되겠느냐』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이외에도 『검찰이 정치도구화되는 현실이 걱정스럽다』라는 개탄도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 구여권, 검찰에 대한 메시지는 김이사장의 평소지론으로 색다른 내용이라고는 볼 수 없다. 정치권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한 내용은 이기택대표에게 『국회에 들어가라』고 조언한 대목이다. 이대표가 모든 것을 걸고 한판 승부를 벌이겠다는 마당에 「후원자」가 반대한다는 사실은 범상히 넘길 사안이 아니다. 김이사장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이대표의 12·12공세를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아태재단측은 『김이사장은 의회주의자다. 원칙론으로 보면 된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한 측근은 『후광(김이사장의 호)은 정치판이 깨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등원촉구도 그런 충정에서 나온 고언』이라고 말했다.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김이사장도 12·12기소유예가 잘못됐다고 보고 있다. 다만 파국을 감수하면서까지 장외투쟁을 벌이는 야당의 전술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사석에서 김이사장이 야당의 장외투쟁강행 소식을 듣고 『이대표 그 사람 참…』이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는 후문도 있다.
이처럼 김이사장측은 등원론을 「원로의 충정」으로 채색하고 있지만 당사자인 이대표측은 당혹하고 섭섭하며 난감한 표정이다. 이대표의 한 측근의원은 『막바지 힘겨루기에서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이라고 불쾌해 했다. 이대표측은 가급적 표현을 자제하고 있지만 내심 『김이사장이 이대표가 홀로서기를 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 사전에 이를 통제하려는 의도』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어쨌든 후원자마저 이견을 표명한 상황에서 이대표는 옥쇄를 각오한 무조건 전진이냐, 퇴각이냐의 기로에 서게 됐다. 오는 25일의 기자회견에서 이대표는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주변 참모들은 『여기서 주저앉으면 죽는다』며「필사즉생」의 논리를 펴고 있다. 일각에서는 『12·12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표직이나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폭탄선언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강공의 선택은 김영삼대통령과 김이사장 두 거인을 상대해야 한다는 벅찬 상황을 전제로 하고있다.【이영성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