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선언」 누구작품인가 설왕설래/“대통령 단계적 국정목표 가시화”/출국전 골격잡아 「비밀카드」로 지참/청와대비서진·경제팀도 눈치못채/총리실 「특별보고」·일부인사제언 등 참고설도 「세계화」는 누구의 작품인가. 「세계화」는 지난 17일 김영삼대통령이 호주 시드니에서 차세대를 위한 장기구상의 요체라고 밝힘으로써 앞으로 정부가 추진해나갈 각종 정책의 핵심 축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정부 내에서는 벌써 세계화를 빼놓고는 정책입안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엄청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세계화」라는 개념이 김대통령에 의해 채택된 배경에 대해선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특히 현정부 출범 이후 규제완화와 자유화, 국제화가 줄곧 강조돼 어느 정도 본궤도에 오를 즈음에 이 개념이 등장함에 따라 세계화가 종전 정책의 연장(경제팀 내부작품설)이냐, 불연속적 단절(경제팀 외부작품설)이냐를 놓고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신경제 5개년계획에도 국제화라는 개념만 들어있지 세계화는 찾아 볼 수 없다. 세계화와 국제화는 4촌격이지만 개념의 깊이와 넓이면에서 세계화는 국제화의 상위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첫 대목은 김대통령이 이 말을 「시드니 선언」으로서 발표할 때 한리헌 청와대경제수석도 하루 전날 단지 구두로 받아적었을 뿐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점이다. 한수석도 이때 처음으로 김대통령의 구술을 받아적었을 정도라면 세계화라는 말이 청와대비서실의 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경제팀의 핵심인 홍재형 부총리나 박재윤 재무부장관도 이번에 이런 선언이 나오리라는 것을 사전에 몰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세계화」는 현 경제팀의 작품이 아니라는 설이 유력하게 나오고 있다.
금융실명제의 경우 청와대비서진이 배제된 채 과천경제팀을 중심으로 준비되었는데 이번엔 청와대비서진은 물론 과천경제팀도 눈치채지 못한 셈이다.
정부 내에서는 김대통령이 세계화구상을 이미 출국 전에 전체적인 골격을 잡아 놓고 「비밀카드」로 지참하고 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골격을 세우는 과정에서 이영덕 국무총리등 일부 인사가 조언을 했을 가능성은 점쳐지고 있으나 청와대비서진이나 과천경제팀은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총리는 총리실에 국제화추진위원회를 설치, 운영해오면서 세계화의 필연성을 인식하고 있던 터에 김대통령의 구상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세계화관련사항을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이 설은 이총리가 김대통령의 출국직전인 9일 청와대에서 「국가발전 장기구상」을 특별보고한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세계화가 발표되는 과정은 의외였지만 세계화가 현 정부의 집권후반부를 관통하는 대정책목표일 수 있다는 점에서 집권초기에 예정한 청사진을 그대로 펼쳤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김대통령은 집권초기의 국정목표였던 규제완화와 자유화가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 「세계화」라는 새로운 국정목표를 제시하고 국정운영의 중심으로 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세계화전략은 김대통령이 평소 가지고 있던 국정운영의 철학에 바탕을 둔 것이고 이것이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참가를 계기로 물 위로 떠올라 가시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95년 세게무역기구(WTO)의 출범과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은 세계화의 과제를 더 이상 늦출 수 없게 하고 있는 외부요인이기도 하다. 세계화추진을 더 이상 머뭇거렸다가는 국경없는 무한경쟁시대에서 낙오자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김대통령의 세계화구상을 내놓은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홍선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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