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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시대」의 단상들/박승평(일요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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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시대」의 단상들/박승평(일요시론)

입력
1994.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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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잼업」 「어솨요」 「50쇼」―. 무슨 암호같기도 한 이런 말뜻을 쉽게 알아차릴 사람이란 많지 않다. 하지만 PC통신을 이용하는 요즘 젊은이들이라면 폭발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이 정도야 「상식」이다. 「재미없어」 「어서와요」 「오십시오」가 그렇게 둔갑해 버린 것이다. PC통신의 이런 행태를 놓고서 오늘의 우리는 「언어파괴」라고 간단히 정의해 버린다. 그러고보면 지금은 온통 「파괴시대」인가보다. 되뇌기도 끔찍한 성수대교를 비롯, 우리 일상의 온갖 부문에서 「파괴」소리가 꼬리를 문다. 다리·철도·지하철·축대·열차·여객선·여객기등 처럼 눈에 보이는 물체나 사건현장에서부터 인륜·질서·가격·경영·조직·이념·체제등 온갖 형이상학적 개념에 까지 무차별로 파괴의 격랑이 휩쓸고 있는 것이다.

 혼란스러운 것은 파괴가 지닌 다양한 얼굴이다. 말 그대로 와해나 기능정지및 사라짐을 뜻하는 성수대교의 추락과같은 부정적 파괴가 있는가 하면 상품의 유통체계합리화로 물건값이 싸지는 개선이라는 의미의 가격파괴가 있고, 새로운 질서나 조직·체제의 등장이나 재창조를 뜻하는 긍정적인 파괴도 있는 것이다.

 또 물리적으로는 한가지로 보이는 파괴현상이 온갖 요소를 싸잡고 있어 복합적으로 내비칠수도 있다. 다리붕괴가 토목공학적 설계·시공·감리에서 뿐 아니라 관리를 맡은 행정체계의 붕괴와 기능정지라는 엄청난 요소도 아울러 노출시켰던 것이다.

 이런 혼돈의 파괴시대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최근 우리주변에서는 이 난제에 관한 몇가지 소박한 시사나 자각이 이미 싹트고 있지않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중의 하나가 품앗이논이다. 예부터 우리는 품을 들여 삯을 받아 살아왔다. 무슨일에 드는 힘 또는 수고를 품이라 할진대 그런 품을 들이지 않고서는 삯이나 소출도 있을수 없다는 소박하고 정직한 그런 삶의 방식으로 되돌아 가자는게 바로 품앗이논이 아닌가 한다.

 사실 최근 중책을 맡은 어느 시정책임자와의 대화에서도 나온 얘기지만 다리하나를 세워 용도폐기될 때까지 제대로 근사하는데 드는 총비용이 건설비의 무려 1·8배라고 한다. 건설비보다 유지·보수비가 더 든다는건 어찌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런데 지금껏 우리는 다리를 세우는 것만도 벅차 그처럼 엄청난 유지·보수비의 존재란 생각도 준비도 않은채 바쁘게만 살아왔던 것이다. 모심기나 김매기때 남의 품앗이를 빌리지 않으면 가을철의 수확일랑 애당초 틀린 일이 되었던 이치를 이제야 새삼 깨우치기에 이른 셈이다.

 그러고보면 다리비용도 하청·재하청과 온갖 인사치레 때문에 20∼40%나 뜯겨 나간데다 충분한 유지·보수예산을 낼 여유나 고장을 찬찬히 살펴볼 자세도 갖춰지지 못해온 짧지않은 세월의 결과가 너무나 비싼 값으로 증폭되어 오늘의 우리에게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또 등장하는게 가격과 조직파괴및 틈새전략의 원리가 아닌가 한다. 오늘날 우리의 상품판매 시장과 업계를 풍미하고 있는 그런 원리라는 것도 이 세상에서 공짜로 거저되는 일이란 없을진대 품을 반드시 들이되 가장 효율적으로 적게들여 비용이나 값을 경쟁력있게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반드시 따지고 확인해야 할 핵심적 요소가 저절로 제기된다. 품과 절차는 재대로 거치면서 비용은 될수록 줄여 어떻게 소비자나 국민들에게 만족을 주고 세계적으로도 경쟁할수 있는 온갖 이름의 작품을 만들어 내느냐는 문제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시장에서도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한 가격파괴현상이란것도 그 핵심은 질은 유지하면서 값 줄이기경쟁을 펴자는 것일진대, 결국은 품앗이에 나선 품꾼의 능력과 주인의 사람고르기와 일시키고 감독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

 그래서 요새 재미있게 여겨지는게 틈새전략이란 것이다. 모두 가볍게 흘려 넘기는 가운데서 값어치높은 히트상품을 찾으려면 빈틈을 용납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능력이 긴요하다. 뽕짝도 클래식도 아니면서 공전의 히트를 날리고 있는 TV음악쇼프로 「열린 음악회」가 바로 그런 틈새전략의 표본이 될수도 있겠다.

 그 다음으로 제대로 사람골라 일시키고 감독하려면 경영학의 최신유행어인 소위 「리엔지니어링」이론에 따라 기존조직마저 과감히 파괴한뒤 효율적으로 재구축하지 않을수 없기에도 이르게 된다.

 이런 잡상과 단상들을 엮어보노라면 결국은 이제 더 이상 공짜는 없는 법이고, 알찬 수확을 위해 당장은 품앗이모으기가 소중하듯 목표보다 절차를 더욱 중히 여겨 깊이 궁리하고 부지런히 뛰어 능력을 크게 발휘해야겠다는 소박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어제의 충격적인 파괴가 또다른 파괴의 당위를 격발시키면서 앞으로의 또다른 파괴의 재앙을 오히려 막아주고 우리 사회를 결과적으로 선진화시키게 될수도 있다는 결론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이래 저래 오늘의 우리는 「파괴시대」를 고뇌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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