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쏘아대는 문명비판/황폐한 현대사회/인간의 도전 주목/「포인트 블랭크」등/감각적 영상추구 회색양복을 입은 리 마빈이 데스마스크 표정을 한채 LA공항 청사내를 거침없이 걸어가는 모습과 그가 배신한 아내 린의 침대에다 연달아 총을 쏴대는 장면이 교차되면서 마빈의 발자국소리의 반향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늙어가는 살인자 자신을 파괴한 얼굴없는 범죄조직에 대한 폭력적인 복수극 「포인트 블랭크」(POINT BLANK·67년 MGM제작)의 아찔하게 멋있는 장면이다.
이 영화는 「신화를 엮어내는 낭만파」라 불리는 런던태생의 존 부어맨감독(JOHN BOORMAN·61)의 첫 미국영화로 그가 자주 다루고 있는 개인의 자각추구와 현대기계사회에 대항하는 투쟁을 현대적 감각으로 다룬 갱스터 멜로스릴러이다. 현대판 필름느와르로 예리한 현대적 외피속에 우화적 의미가 저류로 흐르고 있다. 사실 이야기는 통속적인데 부어맨은 그같은 이야기를 몰아대는 속도감과 눈부신 카메라테크닉으로 표현하면서 아울러 시간과 장소와 연기까지를 애매모호하게 하는등 수수께끼식으로 작품을 처리, 이상하게 강렬한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그의 영화는 회상식으로 진행되는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마구 섞이고 플래시백과 점프컷및 교차편집등이 자유롭게 구사돼 프랑스의 알랭 르네감독(「히로시마 내사랑」「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범죄조직의 돈을 강탈한 워커(리 마빈)가 공범인 친구 리스(존 버논)와 함께 폐쇄된 알카느라즈섬 교도소에 숨어들었다 면전에서(포인트 블랭크) 쏜 리스의 총에 맞고 쓰러진다. 친구와 아내에게서 배신당한 워커는 초인적 힘을 발휘, 육지에 도착해 복수의 총을 뽑아든다. 그러나 워커를 만난 린은 자살하고 워커는 린의 언니 크리스(앤지 디킨슨)의 도움을 받아 리스에게 접근한다.
가차없는 총격과 격투 그리고 유혈과 충돌이 즐비한데 특히 터프가이 마빈과 육감적인 디킨슨의 야릇한 배합이 매우 자극적이다. 영화내내 목석같은 표정을 한 마빈이 인상적인데 그는 자신의 육체적 단호함을 혼란스러운 무감각으로 상쇄시키는 강인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비평가 출신으로 BBC TV에서 기록영화를 만든 부어맨은 늘 자연과 문명, 꿈과 현실의 긴장과 충돌에 관심을 두어왔다.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지적 야심과 허세의 관계라고 비판받기도 한 이같은 양극적인 것에 대한 관심처럼 부어맨의 생애도 성공과 실패사이를 큰 추를 그리며 왔다갔다 했다.
「포인트 블랭크」를 비롯, 액션과 철학이 있는 「구조」(72년), 아서왕의 전설을 그린 「엑스캘리버」(81년), 문명에 의해 황폐화하는 자연의 이야기 「에머랄드 숲」(85년) 및 전미비평가협회가 부어맨을 최우수감독으로 선정한 「희망과 영광」(87년)등이 성공작이다. 반면 「마지막 왕자 레오」(70년) 「자르도즈」(74년) 「엑소시스트2」(77년) 및 최근 작 「마음이 있는 곳」(90년)등은 졸작이다.
개인적이요, 도전적이며 예측불허인 부어맨은 메시지가 이미지와 이야기를 압도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 항상 영국적인 것을 벗어나려고 애쓴 범세계적 영화인이다. 그는 뛰어난 시각스타일리스트로, 때론 얘기가 불충분할지는 몰라도 영상미가 유려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미주본사편집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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