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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는 경제력이다”/이재승(일요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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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는 경제력이다”/이재승(일요시론)

입력
1994.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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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저명한 아시아통, 특히 일본통 학자였던 에드윈 라이샤워 전하버드대교수(작고·주일대사역임)는 그의 저서 『이제 베트남은 다시 없다』(NO MORE VIETNAM)에서 『한반도의 통일이 독일의 통일보다 빠를 것이다』고 예측했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이해관계대립이 독일통일에 대한 그것보다는 훨씬 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날 보듯 라이샤워교수의 예측은 빗나갔다. 통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리라던 독일은 서독에 의한 흡수통일이 실현, 유럽세력판도가 재편성될 조짐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비해 한반도는 남·북한간의 냉전이 살아 약동하고 있다. 그러나 안팎의 상황은 크게 변했다. 미·소의 냉전체제때보다 훨씬 복잡하고 유동적이다.

 한국으로서 최대 변수는 북한 김정일체제의 형상이다. 김이 어떠한 형태의 개방정책을 선택할 것인가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미·북한간의 핵타결에 따른 새로운 화해관계형성과 그것이 앞으로 한미관계와 한반도문제에 미칠 영향이다. 상대가 상대인만큼 어느 것 하나 대응이 쉽지 않다.

 북한은 영국의 명재상 윈스턴 처칠이 한때 스탈린의 소련을 가리켜 말했듯이 『신비속에 싸인 수수께끼의 불가사의』이기 때문이다. 논리와 이성적인 예측이 불가능하다. 한국측의 경협활성화 제의에 북한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성명을 통해 『…대결정책의 파산을 자인하는데 불과하며… 때늦게 던지는 미소를 받을 사람도 없다』고 거부한 것은 지금으로서는 정부차원의 경협추진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해준다. 북한측은 한국측의 정경분리에 대해 정경일체로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투자유치와 교역의 확대를 위해 남한의 민간기업에는 접근하면서 정부는 따돌리겠다는 북한측의 발상은 황당하기 이를데 없다. 더욱 기가 차는 일은 자신들의 이러한 2중전략이 먹혀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기는 홍콩이나 마카오 등지를 통해 추진되고 있는 임가공무역이 지난 2∼3년동안 1억5천만 내지 2억달러수준에 이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홍구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의 지적처럼 『남북의 당국자간 협의와 합의없이』는 남북경협이 진전될 수 없는 것이다. 대금결제방식에서부터 원·부자재 및 완제품의 수송, 관세에 이르기까지 상거래에 따르는 제반협정은 정부당국자사이에서만 체결될 수 있는 것이다.

 투자와 교역은 상거래다. 상호이익이 있어야 하고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상거래가 능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북한측의 의도대로 일방적으로 그들에 의해 좌우되는 경협과 교역은 국제상거래 관행상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미·일·유럽등 선진국들의 기업들이 북한의 이 변칙적 상거래 방식을 수용할 것인가. 북한은 자신을 알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북한은 신용도가 낮다. 스웨덴등 유럽 일부 국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수입대금이나 차관자금의 미불내지 연체문제가 남아 있다. 북한은 경제개발에 절실히 요구되는 자본과 기술 및 상거래의 노하우는 사실상 남한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같다. 정계·업계·학계등의 일부에서는 북한이 어떻게 나오든 북한에의 투자, 교역확대등 경제협력이 무조건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북한정권의 남한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대남정책이 유화될 것인가, 확신을 갖기 어렵다. 북한이 정부간 협상을 재개하지 않는한 대북경협은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 남·북경협은 92년 남·북한사이에 체결된 「남북교류·협력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에 근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 같다.

 급한 것은 남한보다는 북한이다. 공은 북한코트에 넘어가 있다. 북한이 거부했다고 해서 다시 양보할 필요는 없다. 김영삼대통령의 말대로 정부는 남·북경협추진에 조급하지 말아야 한다. 민간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누누이 요구돼 왔지만 과당경쟁은 자제해야겠다. 경쟁을 하다 보면 북한측에 발목잡히기도 쉽고 부당하게 피해를 보고도 벙어리가 돼야 할지 모른다.

 한반도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에 중요한 카드는 결국 경제력이다. 구서독이 구동독을 흡수통일한 것이나 이를 큰 무리없이 정착시켜 나가고 있는 것은 막강의 경제력 때문이다. 독일은 통독4년만에 경제가 마이너스의 성장에서 플러스의 성장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연간 평균 약1천6백억마르크(약1천억달러·80조원)씩 연방정부자금이 구동독경제복구 및 개발에 투입돼 왔다. 2천년까지 10년간 모두 약2조8백억마르크(약1조4천억달러·1천1백20조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대강대국 외교에도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결국 경제력이 열쇠가 된다. 지금 북한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것보다는 국제경쟁력향상에 전력투구하는 것이 통일에의 왕도인 것같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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