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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내들이여(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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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내들이여(1000자 춘추)

입력
1994.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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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천년전 그리스 남자들은 툭하면 이웃나라와 전쟁을 벌였던 모양이다. 팔다리가 성한 남자가 별로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전쟁터에 나갔다가 아예 귀가하지 못하는 남자도 많아서 하루도 편한 날이 없게 되었다. 깨어지고 부러진 남자를 간호하는 것도 지겨운 일이고 금지옥엽 키운 아들을 싸움터로 내보내는 것은 더욱 못할 짓이어서 마침내 그리스 아낙네들은 반상회를 열어 아주 효과적인 반전데모를 생각해낸다. 즉 앞으로 또 전쟁을 일으킬 경우 모든 아내들은 남편과의 잠자리를 거부하겠노라!

 이것은 그때 씌어진 유명한 희극의 줄거리인데 여성운동의 시초라 불릴만하다.

 1년전, 이탈리아 남자들은 툭하면 부정을 저질렀던 모양이다. 

 이탈리아의 한 세무공무원이 어느날부턴가 월급의 수십·수백배나 되는 돈을 집으로 싸들고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99평짜리 빌라도 사고 벤츠자동차도 사고, 이탈리아의 서해안에 땅도 사고, 하여튼 몽땅 사들이는 판이었다. 그의 아내가 아무래도 미심쩍어 돈의 출처를 따져보니 그게 다 국민이 낸 세금을 중간에서 가짜 영수증 써주고 떼어먹은 돈이 아닌가?

 기가 막힌 그 이탈리아 아내는 지폐를 한보따리 들고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허공으로 날려보낸다.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수없이 많은 지폐를 보면서 그 이탈리아 아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것은 1년전쯤 신문의 해외토픽란에서 읽은 사실이다. 

 2천년전도 아니고 1년전도 아닌 바로 지금, 한국의 남자들도 툭하면 동족과 싸움을 벌이려 하고 툭하면 세금을 잘라먹는다. 

 어디 세금뿐인가? 시멘트 줄여서 돈벌고, 철근 빼내서 돈벌고, 적당히 용접해서 돈벌고, 그렇게 해서 번 돈 조금 떼어 위에 주니 위도 돈벌고 아래도 돈벌고 서로 신나는 판인데 한쪽에서는 다리에서 떨어지고, 물에 빠지고, 무서워서 지하철도 못타고….

 그래서 나는 지금 목이 메어 부른다!

 2천년전의 그리스 아내여, 1년전의 이탈리아 아내여, 지금 이곳 한국의 남자들을 위해 부디 환생하시라, 환생하시라!<오종우 극작가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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