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대로 북한은 정부가 밝힌 남북경제협력 활성화방안을 거부했다. 그들이 경협추진을 「대내외적인 고립과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연극」이라고 비난한 뒤 반북대결정책에 대한 사과와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현재의 북한으로서는 남의 경협추진을 배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부러울 것이 없는 인민의 낙원인 주체의 나라」가 「극심한 가난으로 거지가 득실거리고 굶어죽는 사람이 매일 속출」하는 것으로 선전했던 남한으로부터 협력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특히 곧 권력을 계승할 「위대한 김정일」 체제로서는 체면상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출범 이래 지금까지 온갖 비방과 중상을 퍼부어온 김영삼정부와 느닷없이 손잡고 거래한다는 것도 어색하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북한의 거부이유와 내용, 또 거부방법을 보면 그들의 진짜 저의가 어디 있는가를 읽을 수 있다. 즉 서두에 「경협을 배격한다」는 한 마디 외에는 경협을 전면거부한다거나 특히 남측 민간기업들의 진출을 반대한다는 내용이 없으며 대남비방의 강도도 앞서 김일성조문저지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던 내용을 삭제하는등 통상적 수준으로 일관한 점이다.
이는 그들의 고정메뉴인 국가보안법 철폐를 되풀이한 데서 엿볼 수 있다. 배격천명도 정무원이 나서지 않고 중앙방송의 보도를 통하고 이어 노동당산하의 조국평화통일위의 성명형식으로 한 점이 특이하다.
한 마디로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남한과의 경협을 절실히 원하면서도 새 체제가 정돈되기 전까지는 정부간 경협은 반대하지만 민간기업들의 북한진출은 환영하는 이중적 전략을 구사하려는 게 분명하다. 이는 기업들의 경쟁을 이용, 정부와 이간시키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북한이 조평통성명에서 그동안 애써 외면한 기본합의서의 경제교류·협력공동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남북경협에 대한 간절한 기대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주민과 체제의 사활과 관계있는 경협문제에 대해 여전한 이중성·기만성을 나타내는 북한을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그같은 반시대적인 이중성이 결국 북한의 손해임을 지도층은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북한의 배격천명에 관계없이 대북경협활성화를 계속 추진키로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부간의 경협을 제의한 것이 아니라 민간기업의 진출을 허용한 것이어서 그 정도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쓸 것은 없다.
그러나 경협은 추진하되 정치와 경협을 연관시키려 하고 정부와 기업을 이간, 분리시키려는 북한에 대해서는 확고한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 민간기업진출을 엄격하게, 또 점진적으로 허용하되 북한의 수용태세변화에 따라 규모와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북한측의 성의있는 태도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