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부처 관계자들 사이에서 남북경협의 해제방안은 「지뢰밭과 같은 것」으로 통했다. 이 문제의 정책입안 과정에 참여하면 합리적인 논리가 통하지 않고 괜히 기밀을 누설했다거나 특이한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다치기가 십상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직접 담당자들 외에는 남북경협문제에 대해 눈을 감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려는 자세였다. 이같은 자세를 가져오게한 정부내 일화도 많다. 지난3월 뉴욕의 실무접촉에서 북한과 미국이 이른바 핵문제의 「작은 일괄타결」을 합의했을 당시의 일이었다. 당시 한 장관은 경협과 핵문제를 경직적으로 연계해 온 방침을 일부 해제해야 한다는 부처내 의견과 재계 여론을 취합, 건의키 위해 청와대를 찾았다. 그러나 그는 제대로 말도 마치기 전에 호통만 듣고 되돌아 왔다는 후문이다. 이후 그가 관계자들에게 내린 지시는 『경협이라는 말도 꺼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8일 1단계 완화조치가 발표될 때까지 남북경협문제는 이같은 경직된 틀안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
경협연계는 해제되는 마지막 순간 혼선이 극에 달했다. 지난달 21일 북·미합의가 정식조인된 순간 경협을 묶어놓을 명분은 상실됐는데도 해제발표를 질질 미뤄온 결과였다. 이를 발표키 위해 1주일전 부터 8일 상오로 예정됐던 통일관계장관회의가 9일로 연기됐다가 다시 8일 하오로 앞당겨지는가 하면 보도자제를 요청해 놓은 상태에서 내용이 앞서서 새어나온 뒤 관련부처중 누가 책임을 지는가에 대해서만 설전이 집중돼 있는 실정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혼선의 가장 큰 원인은 대북관계 이외의 정치적 고려가 가미되고 있기 때문이다.
2년 가까이 실익없이 묶어놓던 것을 이제와서 누가 푼다고 해서 처음부터 생색이 날리도 없다. 경협과 관련된 지금까지의 정책은 수많은 대북정책의 과오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힐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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