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의 재미동포여대생 애미박양/곧 미로돌아가… “기회주어지면 한국서 살고파” 구한말의 신식군대 황실시위대 장교 박중석정위의 증손녀가 모국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 1월 한국에 와 서울 노원구 중계동 중계어학원 영어강사로 일하는 애미 박양(23·미미시간주립대 사회복지학과4)은 금발머리와 얼굴에 서양인 모습이 섞여있지만 성은 분명 박씨다.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체류비를 벌기위한 아르바이트일 뿐, 처음 찾아온 증조할아버지 나라를 익히고 공부하는 일이 더욱 소중하다.
틈날 때마다 경주도 가보고 박물관과 농촌 견학은 물론, 고궁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증조할아버지의 모습도 그려본다.
박양은 국민학교 시절 아버지에게서 증조할아버지가 대한제국 황실시위대 장교였다는 사실을 듣고부터 한국인 후예란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다.
『15년 전 한국에 다녀오신 아버지가 증조부 사진을 꺼내보이자 할아버지께서 아리랑을 부르며 「한국에 가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박양은 자기 집안의 고난이 곧 조국의 고난이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했다. 아버지 아더 R 박박사(59·한국명 박경재)는 미웨인주립대 미술교육과 교수시절 도자기 연구차 한국을 방문, 자신이 경주박씨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각계의 협조로 가계의 뿌리를 찾아 화제가 됐었다.
박양의 증조부는 1907년 시위대가 해산되자 독립운동을 위해 하와이로 건너간 직후 병사했다. 슬하의 두 아들 정섭(박양의 조부)·영섭형제와 증조모는 각기 흩어져 미국인으로 살아갔다.
난생 처음 온 조국이지만 모든 것이 낯설지 않았다는 박양은 지금 추진중인 재미 박씨일가 15명 전원의 모국 방문계획이 하루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달중 어학원과의 계약이 끝나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 아쉽다면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조국에서 살고 싶다는 희망을 숨기지 않았다.【송영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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