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연변은 남북공존의 실험무대(두만강:18·끝)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연변은 남북공존의 실험무대(두만강:18·끝)

입력
1994.11.08 00:00
0 0

◎이북말·서울말 남유행가·북혁명가곡 혼재/「이별의 강」 머잖아 「화해의 물길」 기대▷연재를 마치며◁

 연변조선족의 마음에는 중국과 남북한 3국의 정서가 혼재한다. 그들이 말하는 『우리나라』, 『조국』은 중국이지만 향수라고 할만한 정서의 대상은 대부분 부모나 자신의 고향인 북한이며 경제적 기대를 깔고 동포애를 말하면 그때는 한국을 일컫는 것이다. 그래서 이념이 굳은 머리로는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또는 남과 북의 만남이 이곳에서는 자연스럽다.

 북한이 직접 운영하는 냉면전문식당인 연길시 하남로의 목란식당에는 지난 7월 김일성사망때 대형 인공기가 3일동안 내걸렸다. 중국조선족은 이곳의 분향소에 줄지어 찾아와 수령의 죽음을 슬퍼했다. 6·25때 중공군으로 참전한 소위 「조선지원군전사」출신들이 보낸 조화도 분향소 곳곳에 늘어섰다. 두만강가 조선족마을 어귀에서는 거창한 대리석비가 흔히 눈에 띈다. 「혁명열사비」라는 것이다. 비석에 이름이 오른 사람들 중에는 항일투쟁가들도 있으나 대부분은 6·25때 참전했다 희생된 조선족이다. 길림성내 혁명열사의 90%는 조선족이다. 나이든 이들은 지금도 『그때 대전까지 진격했었다』는 따위의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다.

 중국에 장기거주하는 북한국적의 조교(조선교포)들만 해도 5천명에 이른다. 연길등지에서 노동이나 단순사무직에 종사하며 북한을 위해 첩보활동을 하는 바람에 북한탈출자에게는 공포의 사냥꾼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난해까지 연간 1천여명이나 됐다는 중국친척방문객이 아니더라도 연변에서는 생각보다 쉽게 북한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연길과 청진의 머리글자를 딴 「연청기업」따위의 이름을 내건 북한무역상들이나 합자기업이 큰길가에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고 한국관광객들이 주로 묵는 백산호텔의 내왕객 옷깃에서도  김일성배지가 자주 눈에 띈다. 얼마전까지 목란식당등 북한이 직접 운영하는 연길지역 식당 3곳의 여성접대원은 모두 북한에서 가려뽑힌 처녀들이었다. 한국관광객들의 호기심찬 질문을 잘 받아넘기던 이들은 북한핵문제로 전쟁위기설까지 돌던 지난 3월께 거의 철수하고 지금은 조선족처녀들로 바뀌었다.

 연변에는 북한고위층 자제들로 구성된 북한대외무역부직할 무역사무소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과 가까운 한 조선족청년은 『벤츠같은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달러를 물쓰듯 해 종종 남조선의 오렌지족과 비교되곤 한다』고 말했다. 이들을 통한 무역이라야 강변의 국경무역과 마찬가지로 약초, 산삼등 임산물이나 해산물과 식량, 의류등을 바꾸는 정도이다.

 오랫동안 중국조선족에게 유일한 마음의 고향구실을 했던 북한은 개방이후 거센 한국붐에 밀려 급속하게 그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 호텔로비에서 마주치는 북한사람들도 압도적인 남조선사람들의 숫자와 거침없는 기세에 주눅든 표정이다. 그러나 눈길은 그다지 냉랭해 보이지 않는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남북한의 공존가능성은 조심스럽게 실험되고 있다. 이곳에서 활동중인 한국의 40대 중소기업인은 『나진·선봉지역에 투자하라는 북한측의 전화를 여러번 받았다』고 말했다. 연변의 조선족이 실향민의 부탁을 받고 친척방문길이나 장삿길에 북한의 친척을 만나 소식을 중계해주는 일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연변지역에 북한의 친척을 데리고 나와 상봉을 주선해 주는 브로커들도 생겼다.

 연변조선족의 말투는 완전히 평양말과 서울말의 혼합형이다. 강한 이북억양은 부드러운 서울말의 영향으로 모가 깎여나가고 있다. 그러나 멋쟁이로 보이려고 열심히 서울말을 흉내내는 연변처녀의 말투에는 끝내 버리기 힘든 이북억양이 배어 있다. 나이트클럽의 한족여가수 입에서 주현미의 「비내리는 영동교」노래에 대한 앙코르곡으로 김정일이 직접 작사했다는 혁명가곡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곳이 지금의 연변이다.

 공존은 멀지 않아 화해의 길을 틀 것이다. 오랫동안 단절과 질곡의 역사를 상징했던 비극의 강 두만강에서는 그 간절한 희망의 작은 실현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남북한의 접점인 두만강역은 미래로 열린 가능성의 땅이다.

□특별취재반

권주훈부장대우 사진부

이준희기자 사회부

이재렬기자 기획취재부

◎연변의 한국기업/3백50개업체 투자… 대기업도 속속 진출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동단 혼춘시 외곽에 현지사정으로 보아 드물게 잘 지어진 현대식 공장이 있다. 넓은 2층본관 건물 옥상에는 대형 태극기가 당당하게 게양돼 있다. 동일메리야스가 지난해 1백30만달러를 투입해 지은 보온내의공장이다. 작업여건과 보수가 주변 중국공장과 비교가 안 되는 이곳의 현지여직원들은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중국측 통계에 의하면 연변을 중심으로 한 길림성일대의 한국업체 투자건수는 지난해 상반기에 이미 2백16건으로 오랜 교류를 터 온 홍콩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이 숫자는 전년도까지의 총투자건수의 2배를 웃도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알려주고 있다. 올 여름에 만난 연길의 한국실업인 친목단체 관계자는 『한국투자업체가 길림성 전체에 6백여개, 연변지역에만 3백50곳정도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두만강개발계획이 본격화하거나 남북관계가 개선돼 청진까지의 육상교통로라도 이용하게 되면 연변지역은 동북아의 새로운 경제중심지로 도약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보였다.

 연길시가지 중심 백산호텔앞 로터리에는 「꿈의 한국형 주거문화」를 선전하는 한신공영의 대형 광고탑이 시민들의 눈길을 끌며 압도하듯 서 있다. 대우가 연길에 호텔을, 인근 안도에 수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현대가 훈춘에 강관공장을, 한전이 열병합발전소를 계획하고 있으며 갑을방적, 기아자동차등 대기업들이 속속 진출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업체는 대부분 요식업이나 식품, 의류, 생필품등을 취급하는 중소규모이다. 더구나 수익성은 의욕만큼 높지 않다. 90%이상이 이익을 못 내고 있다는 것이 현지 투자자들의 얘기다. 그들은 「한 사람에 이쑤시개 하나를 팔아도 12억개」라는 식의 기대에서 벗어날 것을 충고한다. 체계적인 유통망이 거의 형성돼 있지 않아 이런 식의 계산은 전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