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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어지는 문어발/이성철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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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어지는 문어발/이성철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4.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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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민정부가 들어선 지난해 재벌들은 계열사들을 과감히 정리하겠다고 앞다퉈 발표했었다. 경제력집중방지와 업종전문화를 내세운 정부의 강도 높은 대재벌 신산업정책선언에 대한 발빠른 화답이었다. 사실 40∼50개에 달하는, 그런데도 날로 늘어만가는 계열사수 때문에 재벌들은 늘 「문어발 경영」이란 지탄을 받아왔다. 돈되는 것이면 뭐든지 집어삼키는 공룡이란 비아냥도 감수해야 했다. 그러던 재벌들이 계열사를 「자발적으로」줄이겠다 했으니 믿기 어려우나 칭찬할 만한 일이었고 이를 두고 세간에선 「문어의 다리자르기」라고 비유했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다리(계열사)가 잘려진 흔적은 좀처럼 찾을 수 없다. 한두개 계열사를 팔았다고는 하나 한결같이 「잔 가지치기」에 불과했고 오히려 다른 기업을 인수, 다리수를 전보다 늘린 그룹들도 많다. 재벌들은 여전히 수십개의 튼튼한 다리를 가진 거대한 문어의 모습이다.

 재벌들은 『계열사정리가 어디 하루이틀새 될 일이냐. 약속은 꼭 지킨다』고 항변한다. 사실 오너가족간 지분관계가 워낙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푸는데만도 몇년이 걸릴지 모르니 기약없는 변명이라고 몰아세울 수만도 없다. 하지만 재벌들의 약속이행 의지는 갈수록 의심스럽다. 계열사를 줄인다더니 몇달도 못돼 알짜공기업들이 매물로 나오자 모조리 낚아채갔다. 중소기업고유업종제도가 해제되자 이번엔 영세중소기업들과 먹이싸움을 벌이려 하고 있다. 약속은 지켜야겠는데 계열사를 팔자니 아깝고 결국 타계열사로 합병시켜 「다리수는 줄이고 대신 남은 다리를 더욱 굵게 하는」얄팍함마저 보이고 있다.

 요즘들어 재벌들의 계열사정리계획이 또다시 발표되고 있다. 1년전보다 훨씬 더 강한 어조다. 하지만 내년엔 공기업매물도 많고 대기업의 신규업종진출과 인수합병이 한층 자유로워진다. 문어발 확장의 호기를 맞은 셈이다. 다리를 자르겠다고 재차 선언한 재벌들이 과연 이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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