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적자·실업률·탈세등 갈수록 악화/검은돈 도려내는 경제수술 “발등의 불” 서유럽에서 그리스의 상황은 독특하다. 잘 알려진대로 그리스는 서양문화의 종주국이자 민주주의의 발상국이다. 지금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휴양지가 된 크레타섬은 기원전 1600년께 서양문화의 원조인 미노아문명이 시작된 곳이며 펠로폰네소스 미케네 아테네 스파르타등 서양사 교과서에 나오는 고대문명의 중심지들이 모두 그리스에 모여 있다.
이같은 서구문화의 기원이라는 지위를 인정받아 그리스는 지난 80년 일찌감치 유럽공동체(EC)에 가입했다. 그러나 최근 그리스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경제적 상황은 개혁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만들고 있다.
특히 그리스정부의 극심한 재정난은 개혁이 필요한 1차적 요인이 되고 있다. 그리스정부는 지난해 말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백19%에 이르는 부채를 안고 있다. 재정적자는 6백55억드라크마(약2억달러). 그리스중앙은행인 그리스은행 연차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해 실업률은 92년보다 1.1%포인트 늘어난 9.8%였으며 물가상승률도 한 자릿수로 잡겠다는 목표에서 벗어난 12.1%(소비자물가 기준)로 나타났다. 그리스는 지난 7월 EU로부터 오는 99년까지 4백92억달러에 해당하는 무상원조를 받기로 결정됐다.
그리스정부가 이처럼 심각한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위해 해외원조를 받기에 이른 것은 높은 탈세율과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진 공공기업 때문이다.
다른 유럽국가들과는 달리 그리스에서는 영수증을 주고받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다. 공식적인 1인당 국민소득은 7천여달러지만 실질적으로는 1만달러가 넘을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는 것도 이같은 관행과 무관하지 않다. 이에 따라 그리스정부는 탈세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새로운 세원발굴에 나서는등 세수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스정부는 세수증대 노력과 함께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국영기업의 민영화정책은 정치상황과 결부돼 지지부진한 상태다. 국영전신전화국의 주식매각도 정권이 바뀌는 바람에 흐지부지됐다. 현사회당정권은 내년의 선거를 의식, 이미 민영화한 국영버스회사를 다시 국유화했다. 그러나 EU회원국으로서 자본의 자유이동, 화폐단일화등 가속되고 있는 「하나의 유럽」에 발맞추라는 압력이 높아지고 경제회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어 그리스정부는 빠른 시간 안에 서유럽수준의 경제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고민에 빠져 있다.【아테네=송용회기자】
◎BC16세기 크레타섬 중심 「미노아문명」시작… 73년부터 공화제
▷개황◁
공식국명=THE HELLENIC REPUBLIC
수도=아테네(ATHENS)
면적=131,957㎢
인구=1천26만4천명(91년)
수도인구=3백9만7천명
인구성장률=0.1%
인구밀도=77.8명/㎢(91년)
언어=그리스어
종교=그리스정교회 97% 회교 1%
국제공항=HELLENIKON AIRPORT(아테네) 데살로니키공 항등 16개
기후=지중해성 기온으로 4계절이 뚜렷함. 아테네 0∼43도 데살 로니키 ―3∼40도. 연간강우량 남부지방 350㎜ 북부지방 1,700㎜(여름은 건기 겨울은 우기)
화폐단위=드라크마(DRACHMA DRS,DR) 1달러=245.2 9DRS(94년) 1DRS=3.26원
정체=입헌공화국 내각책임제
실업률=9.8%(93년)
1인당GDP=7천4백47달러(93년)
경제성장률=0.7%(93년)
물가상승률=15.2%(93년)
무역수지=수출 86.9억달러 수입1백83억달러
산업별생산비율=제조업17.5% 은행·보험·무역16.7% 유통·호 텔·식당13.9%농·수산업12.2% 교통·통신10 .7% 건설5.1% 기타17%
금리=긴축통화정책과 높은 물가상승률로 고금리기조가 오랫동안 유지 됨. 대출시 커미션,세금등을 포함하면 대출금리는 연간 30 %를 넘음.
한국의 대그리스수출입=수출1억8천7백51만달러 수입2천6백31만 5천달러(93년1월∼10월)
최근경제동향=물가상승률,재정적자,경상수지적자는 개선되는 추세이나 실업률,무역수지적자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음. 금융실 명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지하경제규모가 GDP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세금포탈이 공공연함
▷약사◁
▲BC16세기=크레타섬의 크노소스를 중심으로 그리스의 뿌리라는 미노아문명시작
▲BC336년=알렉산더대왕 즉위, 이후 10년에 걸친 동방정벌로 전 오리엔트를 영토로 하는 대제국건설
▲BC146년=로마군의 침입으로 마케도니아 일부에 편입됨
▲1204년=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점령으로 프랑크왕국통치하에 들어감
▲1453년=술탄 마호메트2세가 이끄는 오스만 터키에 수도가 함락, 이후 1821년 그리스 혁명군의 항쟁이 있을때까지 4백년간 터키의 지배하에 들어감
▲1941년=2차대전발발후 독일, 이탈리아군에 의해 점령됨
▲1945년=입헌군주제 부활
▲1958년=NATO가입
▲1967년=군부쿠데타로 군사정권 수립
▲1973년=대통령중심 공화제로 전환
▲1981년=10번째로 EU에 가입, 총선으로 사회당 파판드레우정권수립
▲1994년=EU의장국가로 선정(1월∼6월)
◎그리스의 명물 「고린도 운하」/펠로폰네소스반도 잇는 6,343m 관광코스/2000년전 「네로황제」가 착공 1893년 완공
아테네가 고대 그리스의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였다면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반도를 잇는 고린도는 일찍부터 무역과 상업이 융성, 기원전 5세기에 이미 인구 30만명이 넘었던 대표적 상업지역이었다. 인근 시실리 이집트 리비아 아라비아로부터 징수한 엄청난 통과세와 밀 파피루스 가죽 향료등 특산물은 고린도를 그리스 남부 최대 상업도시로 이끈 원동력이었다.
고대건축양식중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럽다는 고린도양식이 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상업국가의 풍요로움이 한 몫 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펠로폰네소스반도를 가운데 두고 에게해와 이오니아해를 이어주는 고린도운하는 고린도의 과거를 전해주는 이 지역 최대 관광명소다.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에서부터 80여 아래 수직으로 깎아지른 석회석의 바위절벽, 양 절벽 사이를 흐르는 수면 위로 예인선을 앞세운 연근해 상선이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고린도운하는 그래서 그리스관광의 필수코스로 꼽힌다.
운하위를 가로지르는 4개의 다리중 관광코스로 자리잡은 도보·대형버스용 다리는 주말과 휴가철이면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고 차량들의 행렬로 아테네로 이어지는 도로는 연일 미어터진다.
빼어난 경관 못지않게 고린도운하의 역사도 유서깊다. 고린도의 잘록한 지협을 이용해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곳에 도로를 만들어 육로로 배들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56년 발굴된 디올코스(DIOLKOS)라는 선박이동용 도로에는 당시 배를 실어 나른 수레바퀴 자국이 선명하다.
고대 그리스인들로부터 끊임없이 시도된 운하건설계획이 직접 실행에 옮겨진 것은 약 2천년 전인 서기 67년 로마제국시대의 네로황제 때다. 6천명의 유태인죄수를 투입한 이 역사는 착공 넉달도 못가 중단됐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해가며 6천명의 죄수로 공사에 착수한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1천8백여년이 지난 1882년 고린도운하 건설작업은 다시 시작됐다. 프랑스 회사에 의해 재개된 이 공사는 그러나 시작된 지 7년만인 89년 이 회사가 파산하면서 다시 중단됐으며 결국 11년이 지난 1893년 그리스인에 의해 길이 6천3백43 수심 8 폭 24.6의 운하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반도를 바닷물로 양분하며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라는 크레타보다 결과적으로 더 큰 섬을 만들어낸 셈인 고린도운하는 경제·상업적 가치와는 별개로 그리스의 수많은 명물중에 하나임은 분명하다.【고린도(그리스)=황유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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