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병이 장교들에게 총기를 난사한 현장은 우리 군의 현주소를 다시한번 보여주었다. 군기가 없으면 군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절대명제는 어느 한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31일 사고직후엔 철저하게 통제로 일관했던 군당국은 1일 현장을 공개했다.
현장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한쪽에는 숨진 장교들의 것으로 보이는 탄띠와 철모들이 피에 젖은채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군수사당국은 불우한 가정환경과 군복무에 불만을 품은 사병이 저지른 돌발적인 사건으로만 해석하고 있다. 군당국은 서문석일병이 지난 5월 『높은 놈들 다 쏴 죽이겠다』 『사격하면 몇놈 죽이고 탈영하겠다』는 말을 동료들에게 자주 말했으며, 사건 2시간전에도 『탈영할 마음이 있으면 같이 가자』는 말을 했다고 발표했다. 사병의 개인 신상에 대한 것들을 보란듯이 까발리면서 『이래도 개인의 문제가 아니냐』고 국민들의 동의를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을 본 사람들 그 누구도 군당국의 그같은 강요에 동의하지 않았다. 총기에 의한 안전사고를 막기위해 가장 군기가 세다는 사격장에서 서일병은 탄약을 분배받자마자 총에 장전, 앞뒤에 있던 소대장 2명에게 총을 쏜 뒤 다시 1정도 앞으로 나가며 사선(사선)에 있던 중대장을 쏘았다. 아무도 이를 저지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직속상관들이 총에 맞아 신음하고 있는 동안 65명의 「필승의 명예 공격부대」부대원들은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서일병의 고민과 탈영발언등을 중대장이나 소대장에게 보고한 사병은 아무도 없었다.
피를 나누는 전우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사병들의 문제가 아니라 곧 군전체의 잘못된 훈련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군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월남전에 참전한 네 아버지는 불에서도 살아왔는데 네가 이렇게 죽다니』
국방부는 숨진 중대장 어머니의 절규를 새겨들어야 한다. 사병들의 장교길들이기 하극상 사건 때의 대책들은 어디로 갔나. 국민들은 국방부시계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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