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일각 제기… “BC 8000∼6000년 추정”/입증땐 구·신석기 공백 메울 결정적 자료 한반도에 과연 중석기 문화가 존재했을까. 8월말 소형석촉이 대거 발굴된 제주 고산리 유적은 발표 당시 추정연대(기원전 5천∼3천년)보다 적어도 3천년 정도 앞선 중석기 유적이라는 주장이 학계일각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고산리 유적발굴 지도위원인 임효재교수(서울대)는 28일 『연구결과 고산리 유적은 낮춰 잡아도 기원전 8천년에서 6천년 사이에 존재한 중석기유적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산리유적이 중석기 유물임이 입증될 경우 한반도에서 구·신석기 사이의 역사적 공백을 메우는 결정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석기는 빙하기인 구석기(1만5천년전까지)와 현재와 같은 기후가 나타난 신석기(8천∼5천년전)사이에 존재한 과도적인 문화(1만2천∼ 8천년전)로 수렵과 채집생활이 중심을 이루었다.
중석기문화는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더워지면서 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선사인들이 기온이 낮은 지구북쪽으로 옮겨가면서 남긴 문화로 추정되며, 그래서 지역적인 현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중석기의 대표적인 유적은 북구 마글레모제 유적(스칸디나비아 반도 소재)이다. 이 유적은 빙하가 물러가는 주변지역에서 발굴됐는데 매머드가 멸종되고 새롭게 출현한 새나 노루같은 작은 짐승을 수렵한 흔적이 역력하다.
임교수는 아직 과학적인 시대측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일본 에히메(애원)현의 가미구로이와(상흑암)유적과 비교할 때 고산리유적은 기원전 8천년을 전후한 시기의 유적이며, 이 시기는 중석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가미구로이와 유적은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결과 기원전 8천년의 유적으로 판명됐다.
그는 고산리유적에서 대거 출토된 정삼각형 혹은 이등변삼각형 모양의 소형석촉등 출토유물이 가미구로이와 유적 (1만2천∼8천년전)과 유사한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출토유물의 성격이나 형태가 너무도 흡사해 같은 시기 유적으로 보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중석기라는 지역적인 개념을 고산리유적에 얼마만큼 적용할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지만, 소형석기가 작은동물을 수렵하거나 채집생활을 한 중석기문화의 대표적 유물이어서 이같은 주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손보기교수(단국대 한국민족학연구소장)도 『소형석기가 출토된 점, 석기를 간 흔적이 없고 떼내기만 한 제작방법을 볼 때 중석기 유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계는 8월말 고산리유적에서 이례적으로 소형석기 6천여점이 출토되자 신석기 초기 유적으로 평가했었다.【서사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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