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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속 「진실밝히기」 심혈/12·12피해자·유가족 어떻게 지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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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속 「진실밝히기」 심혈/12·12피해자·유가족 어떻게 지냈나

입력
1994.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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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외아들 사망 잇단 시련/장태원씨/불우한 말년… 89년 변시로/정병주/강제예편뒤 민자의원 활동/이건영씨 12·12사태 당시 신군부에 맞서 항거하다 희생된 유가족이나 부상자 가족들은 「12·12는 군사반란」이라는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다.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이들이 15년간 기울인 노력은 사태 당시의 고통 만큼이나 큰 것이었다.

 최대의 피해자가 되었던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2등병으로 강등되는등 치욕을 겪었다. 정씨는 87년 대통령선거 때 김영삼후보진영에서 선거운동을 돕기도 해 신정부 출범과 함께 공직취임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지금은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수경사령관으로 부임한 지 불과 24일만에 12·12를 맞은 장태완씨는 이듬해 3월 별 2개를 뗀 채 풀려나왔다. 이 충격으로 부친이 작고했고 서울대자연대에 재학중이던 외아들마저 잃었다. 장씨는 82년부터 한국증권전산사장, 90년부터는 회장을 지냈고 지난 4월 제27대 대한재향군인회장에 당선됐다.

 정병주특전사령관은 신군부세력과 총격전을 벌이다 총상을 입고 강제퇴역당한 뒤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89년 경기 양주군 송추유원지 부근 야산에서 변시체로 발견됐다. 당시 검찰과 경찰은 자살로 추정했으나 시체발견지점이 군작전통제구역이었고 정씨가 독실한 가톨릭신도였다는 점등에서 타살의혹이 제기되었다. 정씨의 장남 승환씨(38)는 『검찰의 이번 결정은 정확한 역사를 평가하기에는 미흡하다』며 『역사에 대한 잘못된 판단은 또 다른 희생자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씨의 부관으로 총상을 입고 숨진 김오랑소령의 부인 백영옥씨는 남편의 명예회복을 위해 한때 소송을 준비, 관심의 대상이 됐으나 91년 5월 부산의 자택 4층 옥상에서 떨어져 숨졌다. 백씨는 남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분노로 고독과 실의에 빠져 있다가 83년 불교재단의 지원으로 「자비의 전화」등을 개설하고 불우청소년 선도활동을 하는등 고뇌를 승화시키려 노력했으나 결국 세상을 떴다.

 신군부측의 거사에 반발, 자진 예편했던 김진기 육군헌병감은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다가 93년 이후 토지개발공사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하소곤육본작전참모부장은 92년 교통안전진흥공단이사장직을 퇴임했고 3군사령관으로 강제 예편당한 이건영중장은 82년부터 한국마사회장, 무소속의원등을 거쳐 현재 민자당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홍구합참본부장은 83년부터 6년간 에너지관리공단이사장을 지냈고 지난 해에는 「나의 군 나의 삶」이라는 회고록을 출간했다. 현재는 장남이 경영하는 사업체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79년 10·26사태가 터지면서 합수부측에 의해 육군교도소에 수감됐던 이재전 청와대경호실차장은 83년 성업공사사장, 89년 한자교육진흥회장등을 지내다 올해 전쟁기념사업회장을 맡았다.【조재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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