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력동원 사전의도·선제 총격/야간에 몰려가 대통령재가요구 검찰은 12·12 수사결과 발표에서 『피의자들의 사전 모의및 실행 경위등을 종합해 볼 때 12·12는 정승화계엄사령관을 제거, 군의 주도권을 장악해 전두환합수부장에 대한 인사조치를 사전차단하고 소장군부세력의 군내 입지를 보전할 목적으로 사전계획아래 실행한 군사반란사건임이 명백하다』고 12·12사태의 성격을 규정했다. 검찰은 12·12의 성격을 「군사반란」으로 규정한 근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피의자들은 합수부가 10·26 사건 수사연장선에서 정총장을 연행한 것은 정당한 직무집행이었는데도 정총장계열의 일부 군지휘관들이 보안사 공격을 기도하는등 반란을 하여 대전복작전차원에서 불가피하게 병력을 동원, 진압한 것이므로 12·12사건은 우발적인 충돌사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피의자들은 합수부가 10·26 사건 수사연장선에서 정총장을 연행한 것은 정당한 직무집행이었는데도 정총장계열의 일부 군지휘관들이 보안사 공격을 기도하는등 반란을 하여 대전복작전차원에서 불가피하게 병력을 동원, 진압한 것이므로 12·12사건은 우발적인 충돌사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12·12사건의 준비과정을 보면 합수부의 10·26사건 수사와는 직무상 관련이 없는 국방부 군수차관보, 일선 군단장과 사단장, 특전사 여단장등 수도권 주요부대 지휘관들과 정총장 연행·조사문제를 협의하고 사전에 경복궁 30경비단에 집결했다. 같은 시각에 특전사령관, 수경사령관, 육본헌병감등 육본 직할부대장들을 연희동 요정으로 유인하는등 사전 조치를 하였다. 경복궁 30경비단에 집결한 장성들은 지휘부를 형성, 집단으로 대통령의 재가를 요구하고 병력 동원, 정식지휘계통의 핵심지휘관 체포, 국방부 육본및 중앙청 점령등의 조치를 결정했다.
필요한 경우 병력을 동원해 정총장의 제거를 관철,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는 특전사 1·3·5 공수여단장, 수경사 30·33 경비단장, 서울에 주둔하고 있던 20사단장등 서울 일원에서 직접 병력을 출동시킬 수 있는 지휘관들을 모임에 참여시킨 점에 비추어 더욱 명백하다.
실행경위를 보더라도 10·26사건 재판이 거의 종결되는 시점에서 구속영장발부등 적법절차를 무시한 채 대통령의 재가여부와 관계없이 비상계엄하의 사실상 최고실력자인 계엄사령관 연행을 강행했다. 보안사 대공처장겸 합수부수사단장 남웅종 준장은 배제된 반면 연행임무를 수행할 위치에 있지 않는 허삼수보안사인사처장, 성환옥육본헌병감실기획과장등 자파 계열의 장교들이 연행을 주도하도록 임무를 부여했다. 이들은 정총장의 지시에 따라 대통령의 재가여부를 확인하려는 수행부관과 경호장교에게 기습적으로 총격을 가해 제압하고 정총장에게 M16 소총을 들이대고 위협, 강제로 연행했다.
또 10·26사건이후 대통령 경호업무에서 배제돼 있던 경호실병력을 무단 동원, 대통령관저인 총리공관을 장악한 뒤 대통령이 「국방부장관의 의견을 듣고 재가여부를 결정하겠다」고 거부의사를 밝혔는데도 정식지휘계통에 있지 않은 장성들이 야간에 집단으로 관저에 몰려가 재가를 요구했다.
이어 공수부대 병력을 동원, 군 최고지휘부인 국방부를 점령하고 국방부장관을 보안사령부로 연행, 집단으로 결재를 요구했다. 한편 전방전차부대까지 동원해 중앙청, 국방부와 육본등을 점령했으며 육군참모차장등 핵심지휘관들을 체포했다.
12월13일 새벽 대통령이 사후재가를 하기 전에 이희성중앙정보부장서리를 육군 참모총장에 임명, 합수부측 장성들을 군요직에 중용하는 인사를 관철시켰으며 후속 인사조치가 완료될 때까지 병력을 철수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사건은 사회전반에 민주화가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장 군부세력의 리더인 전두환합수본부장이 정계엄사령관과 갈등을 빚게 돼 곧 인사조치될 것이라는 설까지 나돌게 되자 정총장의 10·26사건 관련혐의를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총장을 제거, 군의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전두환합수본부장에 대한 인사조치를 사전에 차단하고 소장군부세력의 군내 입지를 계속 보전할 목적으로 사전계획하에 실행된 군사반란사건임이 명백하다>【정리=이태희기자】
◎전·노씨측 반응/“편파적 수사” 반박문 발표/“정치적인 판단… 헌소등 검토”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측은 검찰이 정승화씨등 고소인측의 주장만을 받아들이는 편파적 수사를 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치상황의 변화에 따른 정치적 판단이라는 주장도 폈다. 두 전직대통령의 변호인단은 29일 합동으로 검찰처분에 대한 반박문을 발표했다. 변호인단은 조만간 항고나 헌법소원등 법적인 대응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두 전직대통령은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지만 대응의 강도에서는 약간의 편차를 보였다. 12·12 당시 핵심적 역할을 했던 전전대통령측은 사실관계와 법논리의 측면에서 검찰발표를 정면 반박했다. 노대통령측은 이같은 반박에 동조하면서도 『지난 87년 대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변호인단은 반박문에서 검찰결정의 4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우선 지난 80년3월 대법원에서 확정된 정승화씨에 대한 내란방조혐의를 반박의 근거로 제시했다. 수사기관인 검찰이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배치되는 어떤 결정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 지난 92년 12·12에 대해 검찰이 내린 「무혐의」 결정도 논거로 제시했다.
전전대통령측의 이량우변호사는 『검찰이 증거를 토대로 판단하지 않았다』면서 『2년여 전에 무혐의 결정을 내렸던 검찰이 입장을 바꿨다면 그 이유도 함께 해명해야 한다』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변호사는 『조만간 검찰이 발표한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반박하는 내용의 반박문을 낼 계획』이라며 『피고소인으로서 기소유예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은 없지만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전대통령측의 한영석변호사도 같은 입장이다. 이들 변호인단과 피고소인들은 이번 주초 회합을 갖고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한편 전전대통령측은 12·12를 비롯, 5·18 김대중내란사건등에 대한 고소·고발이 잇따르자 긴장하는 모습이다. 전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이같은 정치적 곤경이 계속되면 정치적 대응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정광철기자】
◎고소인측 회견/기소유예·발표시기 불만/“납득못해… 빠른시일내 항고”
정승화 전육군참모총장등 고소인측은 29일 검찰의 12·12 수사결과에 대해 『검찰수사로 당시상황등에 대한 진실은 어느 정도 밝혀졌다고 생각하지만 기소유예처분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전총장, 장태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 이재전 당시 청와대경호실 차장등 고소인 22명은 이날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직후 서울 강남의 음식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피고소인에 대한 기소유예처분과 발표시기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정전총장은 고소인들을 대표해 『군형법상 반란죄등 구체적인 혐의적용에 대해서는 우리가 새로운 증거를 갖고 있지 않는 한 검찰의 해석에 불만이 없다』며 『그러나 유죄가 인정된 이상 반드시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올 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공소시효완료가 임박한 만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항고등 가능한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정전총장은 또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에 대해서도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말했다.
장전수경사령관은 『사소한 절도사범들도 모두 사법처리되는 법치국가에서 중죄를 저지른 반란자들을 국가에 공헌한 점이 있다는 등의 이유만으로 법의 심판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단 재판을 받게 한 뒤 대통령이 통치권 차원에서 사면조치한다면 용인할 수 있으나 기소조차하지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고소인측은 또 『쿠테타가 성공했다는 이유로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12·12사건과 같은 반란이 계속해 일어날 것이며 이를 막을 아무런 정당성이 없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고소인측은 이날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기소유예처분과 검찰발표시기를 우선 성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해 다음으로 미뤘다. 이들은 검찰로부터 결정문을 정식으로 받은 뒤 의견을 다시 정리해 다음 달 2일께 성명을 발표하기로 했다.【현상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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