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분야 중소업 집중육성/고용창출·새제품개발 박차 올해 3월 총선에서 우파정권이 들어선 이탈리아에는 지금 경제르네상스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정치·사회분야의 개혁작업을 일단락한 「마니 폴리테(깨끗한 손)」가 경제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53명의 총리를 겪어온 이탈리아국민들은 지난 총선에서 정권을 획득한 기업가출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신임총리에게 과거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경제부흥에 대한 기대다.
밀라노의 은행원인 에치오 시에피씨는 『베를루스코니는 국민들의 관심사를 알기 위해 체계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최초의 총리』라며 『정치에 시장조사기법을 도입한 그의 진취성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로베르토 레골리씨는 『이탈리아정부는 마침내 기업이 무엇인지 아는 총리를 갖게 됐다』고 평했다.
하지만 「마니 폴리테」로 촉발된 정치·사회적 변혁이 경제부흥으로 연결될 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87년이래 9∼10%선을 기록해 온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최근 3∼4%로 떨어지는등 경제가 고물가―고임금―국제경쟁력 저하의 악순환에서 탈피할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실업률이 11.5%에 달해 국민들은 여전히 심각한 경제난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에 따라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96년까지 45만명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 실업난을 해소하는데 경제정책의 최대 역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새 정부는 이탈리아 경제의 견인차라 할 수 있는 중소기업들에 가장 큰 희망을 걸고 국민의 여망에 답하려 하고 있다. 이탈리아 기업중 86%가 매출액 1백억리라(약 50억원) 이하의 중소기업이며 매출액이 1천억리라 이상인 기업은 1%에 불과하다. 중소기업들은 그러나 대기업에 비해 뛰어난 활동을 보여 중소기업이 주류인 섬유·의류·제화업계의 경우 지난 해 전년대비 31%가 증가한 1백55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놀라운 실적을 올렸다. 이런 이유로 새 정부내에선 『만일 중소기업 4개사중 1개 기업이 직원 한 사람만 더 고용해도 1백만명의 새로운 고용인원이 창출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이 고용창출과 이노베이션을 통해 이탈리아 경제르네상스의 주역이 될 것이란 기대는 실현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최근 새 정부는 재투자되는 기업의 수익금에 대해 앞으로 2년간 세금을 감면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대기업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반면 중소기업들은 투자를 대폭 늘리는등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제중심지인 밀라노지역 공예협동조합의 에토레 카타니회장은 『과거 정권과 달리 새 정부는 경제부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감을 잡고 있는 것 같다』고 전제한 뒤 『중소기업에 대한 은행의 대출을 늘리고 1개 기업당 2백여 종류에 달하는 각종 형태의 세금을 줄인다면 이탈리아 경제는 르네상스를 맞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밀라노=김현수기자】
◎개황/인구 5천7백만명,1인GDP 3만1천불… 47년 공화국헌법 공포
공식국명=THE ITALIAN REPUBLIC
수도=로마(기타 대도시:밀라노 나폴리 토리노 제노바 피렌체)
면적=301,277㎢
인구=5천7백50만명(93년말 현재)
인구증가율=1.5%
인구밀도=190.8명/㎢(91년12월 현재)
종족=이탈리아인이 대부분(북부에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슬라브계 거주)
언어=이탈리아어(북부 소수민족은 독일 프랑스 슬로베니아어등 병용)
종교=가톨릭
국제공항=레오나르도 다빈치(로마) 리나테(밀라노)
국제항구=제노아 나폴리 베니스
기후=북부 섭씨 ―3.1∼―4.0도(1월중) 18.7∼29.2도(7월중)
화폐단위=리라(LIRA) 1달러는 약 1,600리라. 1백리라는 50원 정도
시차=한국보다 8시간 늦음
수출=1천6백79억달러(93년)
수입=1천4백72억달러(93년)
실업률=11.5%(93년말 현재)
소비자물가상승률=4.2%(93년말 현재)
1인당GDP=3만1천2백77달러(93년말 현재)
정치형태=내각책임제. 의회는 임기 5년의 양원제로 상원 3백15명(인구 20만명당 1석꼴) 하원 6백30명(인구 8만명당 1석꼴)으로 구성
○약사
▲고대(BC753―BC509)=BC86년부터 라틴과 사비나를 중심으로 7왕국 형성
▲로마공화정 시대(BC509―BC27)=귀족을 중심으로 2명의 집정관이 지배
▲BC27년=아우구스투스황제가 즉위하며 제국시대 개막
▲395년=동·서로마로 분열
▲476년=게르만족 침입, 서로마 멸망
▲962년=신성로마제국 지배에 들어감
▲1453년=동로마제국 멸망과 터키의 지중해 진출로 제노아 피렌체등 도시국가 쇠퇴
▲1861년=에마뉴엘 2세 즉위
▲1871년=전 이탈리아통일 완성. 로마로 수도를 옮김
▲1922년=무솔리니 파시스트 집권
▲1925년=파시스트 독재체제 확립
▲1947년=공화국 헌법공포
▲1948년=초대의회선거. 기민당 과반수의석 확보, 사민 자유 공화등 4당 연정수립
▲1960년대=기민당 중도좌파의 지지를 받기 위해 사회당과 연립 정부 구성
▲1970년대=공산당 세력확장(75년 지방선거 득표율 33.4%)
▲1980년대=기민당 세력퇴조, 사회당 세력확장
▲1993년=국민투표실시. 상원의 비례대표제 폐지
▲1994년=3월말 실시된 총선에서 우파 자유동맹 집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총리 취임
◎이 3대기업/피렐리사/「타이어생산」 세계적 명성/90년 도산위기 경영혁신으로 극복/통신사업도 참여 1백년전통 명맥
타이어와 통신케이블생산회사인 피렐리는 이탈리아 3대 기업중의 하나다. 1872년 설립 당시 전화선생산 판매회사였다가 1890년 자전거바퀴를 시작으로 자동차용 타이어시장에 뛰어들어 현재 세계 5대 타이어생산업체가 됐다. 따라서 유럽을 휩쓴 불황의 늪에 빠져 90년대초 도산직전까지 몰렸던 피렐리의 재기과정은 이탈리아국민들은 물론 유럽의 관심을 끌고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피렐리는 탄탄한 경영으로 유럽의 타이어시장에서 프랑스의 미셀린에 이어 2위의 자리를 유지했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유행이었던 기업매수합병(M&A)바람에 편승해 91년 독일의 컨티넨털사를 인수하려다 실패하면서 창사이래 최대의 위기에 빠졌다. 주가는 폭락했고 부채만 20억달러에 달했다. 결국 창립자의 손자인 네오폴도 피렐리회장은 경영에서 물러나야 했다.
피렐리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인수한 사람은 마르코 트론체티 프로베라 전무(48). 28세에 네오폴도 피렐리회장의 딸과 결혼해 피넬리와 인연을 맺은 트론체티는 천부적인 경영재능으로 고속승진을 거듭해 결국 후계자로 지목받았다. 트론체티가 빚더미에 쌓인 피렐리의 옛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추진한 구조개편작업은 유럽인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는 40개 자회사를 처분하고 경영진의 4분의 1인 1백70명을 내보냈다. 밀라노 한복판의 화려한 건물에 자리잡았던 회사본사를 창립 초부터 공장이 자리잡은 북부 르사르카거리로 옮겼다. 종업원을 91년부터 2년동안 무려 8천5백명이나 줄이고 공장자동화를 추진했다. 내부정비 뿐만이 아니었다. 이탈리아기업들이 기업매수합병에만 신경쓰고 기술개발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을 수용해 새 제품개발에 전력을 기울였다. 판매전략도 바꾸었다. 신규출고되는 자동차 중심에서 3년 이상된 차의 교체타이어시장을 집중공략하는 것이었다. 새 제품 출시와 전략변화는 대성공을 거두어 지난해에는 목표보다 2배 이상을 판매했다. 피렐리는 91년 40억달러에 달했던 적자가 차츰 줄어 올해 흑자기조로 돌아설 전망이고 누적적자도 11억달러로 91년의 절반수준으로 떨어졌다.
트론체티전무가 피렐리재건계획의 마지막 수순으로 생각하는 것은 민영화예정인 이탈리아 국영전화국의 인수다. 피렐리는 미국시장에서 가장 큰 케이블공급사로 성장한 기세를 몰아 국내에서 국영전화국인수작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탈리아의 복잡한 정치·경제상황에 막혀 있다. 피렐리판매부의 홍보담당 피터 타이슨씨는 『우리는 최근 2년동안 아주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헤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제 케이블분야의 성장에 피렐리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장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로마=송용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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