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이행·자재사용 확인 “대충”/경험미숙에 「검은유착」도 원인/같은예산·자재로 지어도 외국사 감리땐 “튼튼” 『외국 나가서는 잘 하는데 국내서는 왜 죽쑤나』 국내 건설업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국내 건설업체는 해외건설사업으로 매년 40억달러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을 정도로 시공능력이 세계수준급이다. 그런데 똑같은 기술로 국내에서 시공을 하면 문제가 생긴다.
당사자격인 건설업계는 물론이고 건설전문가 정부당국자들은 한결같이 『그 원인이 설계대로 시공을 하지 않는데 있다』고 말한다. 설계가 원천적으로 잘못되어 있지 않는 한 설계대로 공사를 진행하면 불실시공의 시비가 일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설계대로 공사를 하는지는 누가 확인하나. 감리원이다. 감리원이 눈감아주면 그만이다. 허술한 감리제도가 불실공사를 야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군과 미군이 절반씩 나누어 사용하고 있는 부산 제8부두의 창고시설공사가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한미 양국군은 지난 70년대말 국내 굴지의 모건설회사에 이 공사를 각각 맡겼다. 예산도 똑같고 자재도 동일했다. 그런데 1년도 못가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미군측이 사용하는 시설은 토치카같은 튼튼함을 유지했으나 한국군측이 사용하는 시설은 물이 새는등 말썽을 부린 것이다. 원인은 간단했다. 시공과정에서의 감리활동에 차이가 있었다. 미군은 미국측공사감독관(감리원)을 파견하여 설계대로 공사를 하게 했지만 한국군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실시공과 불실시공의 차이는 바로 감리에 있었다. 이런 예는 많다. 국내 건설공사 가운데 외국기관이 감리(감독)를 한 것은 몇십년이 지났는데도 유지보수가 별로 없을 정도로 건실하다. 30여년된 광화문의 쌍둥이빌딩(문화체육부건물과 미대사관건물), 20여년된 구반포아파트, 강남구 삼성동 차관도로등이 대표적인 예다. 말레이시아의 피낭대교(현대건설), 싱가포르의 레플즈시티호텔(쌍용건설)등 국내 건설업체가 시공한 세계적 명건축물의 감리도 미국등 외국감리기관이 맡았다. 동아건설의 리비아대수로공사도 영국의 브라운 앤드 루츠사의 감리아래 진행되고 있다.
감리활동은 광범위하다. 설계변경시에는 설계변경의 타당성을 따진다. 일부분의 설계변경이 건축역학상 전체 구조물의 안전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철근 벽돌 콘크리트등 자재는 적정한지 검사한다. 설계도면이나 시방서대로 시공하지 않을 경우 공사를 중지시키고 재시공명령을 내린다.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감리원이 부실시공을 눈감아 줄 경우 시공업체는 엄청난 부당이익을 챙길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하게 설계를 했더라도 감리가 부실하면 사상누각이 되고 만다.
국내에는 1백96개의 감리회사가 있고 여기에 소속된 감리원이 8천여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질이 문제다. 본격적인 감리제도가 도입된지 4년밖에 안된 탓인지 감리원의 절반이상이 경력 4년미만의 「햇병아리」들이다. 마치 대학생(시공업체)이 쓴 논문을 국민학생(감리원)이 심사하는 격이다. 감리시장을 조기에 개방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이같은 배경에서 나오고 있다.
공사발주기관 시공업체 감리회사를 연결하는 「3각 먹이사슬」도 부실감리의 한 요인이다. 감리회사는 발주처로부터는 일감따내기에 바쁘다. 시공업체의 대부분이 자금력과 기술력에서 감리업체를 앞선다. 대신 감리업체는 공사중지명령권등을 갖고 있는등 제도적으로 「끗발」이 세다. 부당이득과 금품수수등을 노린 검은 야합이 싹트지 않을 수 없다. 선진국처럼 감리만 제대로 된다면 덤핑입찰이나 불법하도급 정치자금수수등은 문제가 될 수 없다. 이런 부작용에 따른 손해는 시공업체나 발주처의 내부문제일 뿐이다. 손해도 한두번이지 매번 손실을 내면서 덤핑입찰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이백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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