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10% 로비… 하도급거쳐 절반 “뚝” 멀쩡하던 건물이 갑자기 무너지는 부실공사는 입찰에서부터 그 씨가 뿌려진다. 계획과 설계―입찰―시공―감리의 전 공사단계에서 썩을대로 썩은 부조리와 비리때문에 부실공사·건설재해를 낳고 있지만 입찰과 낙찰과정에서 졸속공사·부실공사의 싹이 튼다는 것이다. 공사를 따내기 위해 건설업체들은 로비자금을 내야 하고 그런 가운데서도 이익을 남기려면 제대로된 자재를 쓸 수 없다. 관급공사를 딴 업체가 손해난 부분을 충당하려면 하도급업체에 다시 저가로 공사를 줘야 한다. 로비자금을 주기는 하도급업체도 마찬가지여서 하도급업체는 저가로 재하청을 주고 이익을 챙긴다. 단계별로 내려가는 입찰과 낙찰과정에서의 로비자금은 공사비의 10%를 넘는다고 한다. 로비자금 챙기고 이익을 남기자니 원래 제대로 된 건물을 짓기 위해 들여야 하는 공사비의 절반도 공사현장에는 투입되지 않는다. 빼먹은 절반이상의 공사비는 적당히 시멘트로 덮어버리면 그만이다. 도무지 제대로 된 공사를 기대할 수가 없다.
입찰과정에서부터 부실공사가 불가피한 가장 큰 원인은 가격경쟁위주의 입찰관행이다. 가격경쟁으로 입찰이 이루어지는 까닭에 건설업체간에 저가투찰이 일어난다. 기술능력에 의한 경쟁은 아예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저가투찰이 야기되는 직접적인 원인은 저가로 수주해도 저가로 하도급을 주고 싼 자재를 사용하며 시방서와 다르게 시공함으로써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데 있다. 연고권을 얻어 다음공사를 따거나 입찰자격사전심사(PQ)가 적용되는 1백억원이상 공사에 참여하기 위한 자격을 얻자면 실적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그저 공사를 따놓고 보자는 분위기가 일반화돼 있다.
정부관리와 유착된 입찰비리는 50년이상 만연돼 온 것이다. 자유당시절 대형 5개 건설업체가 정치권자금을 풍부하게 대주고 돌아가면서 관급공사의 대부분을 차지했었다. 관급공사와 검은 돈의 연결고리는 최근에 적발되는 각종 건설비리사건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S건설에서 최근까지 임원으로 일했던 관계자는 『90년대 초반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를 당연히 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연고권을 가지고 있는데다 관련기술이 많아 낮은 가격으로의 입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찰뚜껑을 열어보니 낙찰자는 또 다른 S사로 결정됐다. 평소 관계를 맺고 있던 모처 사람을 통해 사정을 알아보니 발주처의 고위 관계자가 예정가를 미리 알려줬다는 것이다. 로비에서 밀려났던 것이다』고 말했다. 지금도 발주처는 예정가를 미리 특정 업체에 알려주고 공사권을 팔아먹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건설업체들의 치열한 입찰전장에서는 불공정 담합도 비일비재하다. 새 정부들어서도 이같은 관행은 사라지지 않아 최근 10여개 대형업체가 입찰과정에서 담합한 사실이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담합과정에서는 업체들끼리 검은돈을 서로 주고받기도 하고 기업은 입찰책임자들에게 이같은 검은돈을 공공연히 지급한다. 올부터 공사장에 내걸린 「부실시공 추방」구호가 무색하게 기업들끼리 검은 거래를 하며 공사장에 들어가야 할 돈을 호주머니에 챙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만연된 입찰과 낙찰과정에서의 비리는 정부의 정책으로도 통제불능이다. 입찰제도는 입시제도나 다름없이 수시로 바뀌었다. 기업들의 로비에 밀려 51년이후 44년동안 모두 9차례나 제도가 바뀌었고 이 제도는 내년부터 또다시 바뀐다. 제도를 개선했다는 것이 기껏 과거제도로 되돌아가는 현상도 낙찰제도의 연혁에 나타나 있다. 기업들의 치열한 로비과정에서 바뀌고 바뀌다가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입찰과 낙찰과정에서 빚어지는 각종 부조리와 비리의 고리를 끊지 않고서는 부실건설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이종재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