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집권 다수 싱할리족 차별정책 계속/소수 타밀족 83년 무장단체만들어 투쟁 내달초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둔 스리랑카정국이 23일 야당지도자에 대한 폭탄테러사건을 계기로 또다시 회오리치고 있다. 사망자만 50여명이 넘고 3백여명의 엄청난 부상자를 낸 이번 폭탄테러 사건의 배후세력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지만 스리랑카당국은 일단 타밀분리주의 과격단체의 범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폭탄테러로 희생된 가미니 디사나야케 통일국민당(UNP)후보가 그간 타밀분리주의를 표방한 무장과격단체인 「타밀엘람호랑이들(LTTE)」로부터 수차례 공공연한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지난 91년 라지브 간디 인도전총리에 이어 지난해 라나싱헤 프레마다사 스리랑카전대통령에 대한 자살폭탄테러를 자행했던 LTTE가 또 다시 디사나야케의 목숨을 노린 이유는 명백하다. 그가 내달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될 경우 타밀족에 대한 강경노선을 추구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최근 보스니아나 르완다사태등과 마찬가지로 스리랑카의 정국혼미도 민족분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약1천7백만 스리랑카 인구의 74%를 이루는 싱할리족(불교)과 18%인 타밀족(힌두교)이 끊임없이 대립하면서 충돌해 온 것이다.
두 민족의 구원과 반목이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세기 영국식민지시대부터. 당시 영국은 다수인 싱할리족을 통제하기 위해 타밀우대정책을 실시했고 48년 스리랑카가 독립하며 정권을 잡은 싱할리족은 식민지시절 우대받던 타밀족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싱할리족의 민족차별정책에 견디다 못한 타밀족은 인도의 지원을 받아 지난 83년 LTTE를 결성, 무장투쟁에 들어갔다. 하지만 인도의 라지브 간디총리는 85년 스리랑카와 평화협정을 맺어 스리랑카 내정간섭의 발판을 마련하고 이용가치가 없어진 LTTE의 무장해제를 위해 6천명의 인도군을 스리랑카에 파견해 이때부터 인도군과 타밀족의 싸움으로 비화됐다. 인도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던 LTTE가 91년5월 인도내 타밀집단거주지역을 방문했던 간디전총리에게 폭탄테러를 감행, 살해한 것도 이 때문이다.
LTTE는 이후 자신들에 대한 소탕령을 내린 프레마다사 스리랑카전대통령을 암살하는등 스리랑카정부 무장투쟁을 가속해 왔다. 이번에 암살된 디사나야케후보도 프레마다사와 같은 통일국민당소속으로 지난 87년당시 타밀족의 소탕을 위해 인도군을 재배치하는 내용의 조약을 체결한 전력 때문에 LTTE의 암살표적이 됐다는게 대체적인 중론이다.
이번 폭탄테러로 인해 싱할리족 위주의 현정부와 타밀반군의 화해가능성은 당분간 희박해진게 사실이다. 지난 8월 총선에서 17년간 집권해 온 통일국민당을 누르고 집권에 성공한 찬드리카 쿠마라퉁가총리(여)는 최근까지 내전종식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타밀반군과 평화협상을 추진해 온 터였다. 하지만 야당지도부가 LTTE의 테러로 폭사함으로써 국민감정이 악화돼 쿠마라퉁가총리의 화해노선은 한동안 제동이 걸릴 게 분명하다.
그러나 대선후보로 나선 쿠마라퉁가현총리는 이번 사태로 오히려 당선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타밀과의 공존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결국 기로에 선 정국의 고삐는 쿠마라퉁가총리에게 쥐어진 셈이다.
그가 들끓는 싱할리족의 민족감정을 진무하면서 동시에 타밀반군과의 평화교섭을 어떻게 해 나가느냐에 향후 스리랑카의 앞날이 걸린 것이다.【이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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