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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돌아오다니… 믿기지 않아”/조창호씨 가족들 기쁨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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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돌아오다니… 믿기지 않아”/조창호씨 가족들 기쁨의 눈물

입력
1994.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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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통지서까지 받아 국립묘지에 위패/“20대 앳된얼굴이 초췌한 노인으로”… 오열 『창호야, 43년을 그리던 얼굴이 뼈와 가죽만 남았구나』 『누이도 머리가 하얗게 센 것을 제외하고는 여학생때 모습 그대로시네요』

 북한을 탈출한 조창호씨(64)는 입원중인 병원에서 24일 꿈에 그리던 가족들과 상봉했다.

 조씨의 큰누이 창숙씨(74·전 건국대가정대학장·서울 서초구 서초동)와 동생 창원씨(61·미국거주)는 한동안 부둥켜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6·25전쟁때 전사통지서까지 받았던 가족들은 밤늦게까지 재회의 기쁨을 만끽했다.

 창숙씨는 『20대청년의 앳된 얼굴로 생이별했던 동생이 노인이 되어 돌아온 현실이 꿈만같다』면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조씨는 창원씨를 얼싸안고 『생전의 아버지와 꼭닮았다』며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 밤마다 꿈을 꾸었다』며 말끝을 잇지 못했다.

 『조국이 이렇게 발전했는데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던가』 조씨는 지나간 파란만장한 삶을 되돌아 보는 듯 회한에 젖어 눈을 지그시 감았다.

휴전후 가족들에게 들려오는 것은 절망적인 소식뿐이었다.

 백마고지전투에서 조씨와 함께 싸웠다는 부대원은 『조소위가 부상한 부하를 데리러 간뒤 행방불명됐다』고 전했다.

 창숙씨는 『부모님들은 전쟁이 끝난뒤 포로교환때 명단을 확인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셨고 이산가족찾기때는 하루종일 텔레비전만 보시면서 애를 태우셨다』고 말했다. 창원씨는 『징집장소였던 진명여고에서 내 손을 꼭잡고 「몸조심하고 부모님을 잘 모시라」던 형이 살아 돌아온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조씨는 77년 전사자로 처리돼 동작동 국립묘지 위패실에 봉안되어 있는 사실이 24일 확인됐다. 국립묘지관리사무소에 의하면 6·25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나 경찰·군무원등이 실종된후 25년이 지나면 전사자로 처리하고 있다.

 카드번호가 47―8―052인 조씨는 중위로 추서됐고 소속사단과 군번·사망일자(51년 9월10일)등이 새겨져 있다. 국방부병적에는 임관구분은 포사 기수13기, 전역종류는 제적, 전역구분은 사망(전사)으로 되어 있다.【정덕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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