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순결한 영혼들의 증언(박완서칼럼/화요세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순결한 영혼들의 증언(박완서칼럼/화요세평)

입력
1994.10.25 00:00
0 0

 이 난의 필진의 한 사람으로서 내 차례가 돌아온 때가 마침 성수대교 무너진 얘기를 피할 수 없는 시점이라는 게 참담하고 혐오스럽게까지 여겨진다. 그동안 각계각층에서 분노의 소리와 함께 다양한 진단이 이루어졌고, 부실공사 졸속공사라는 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일치된 진단이고, 가장 가공스러운 것은 조만간 무너질 요인이 육안으로도 검증되는 다리가 몇개 더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같이 「대교」자가 붙은 「기술한국」이 만들어낸 다리들이 말이다. 그런 진단과 예견이 하나도 틀린 것이 아닌 줄 알건만도 기분이 여간 나쁜게 아니다. 여기서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분노보다도 한층 구제불능의 자포자기적인 정서이다. 다만 아직 안 무너졌다뿐인 다리를 설마 내가 건널 때 무너질라구 하는 요행수만 믿고 건너다니는 길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국민이 달리 무슨 생각을 더 할 수 있으랴. 또한 그런 진단들은 하나도 새로울 게 없이 이미 다 알고 있던 사실이고, 우리의 분노와 비애에 비해 표현이 너무 점잖다는 것도 우리의 냉소를 자아내게 한다. 

 정부에서 발주한 수많은 공사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어떠하다는 것을 부실공사니 졸속공사니 하는 품위있는 말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여과없이 인용하자면,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고, 여기 바치고 저기 바치고, 얼마나 떼어먹혔을까 하는 것이다. 발주과정에서부터 엉터리 감리에 이르기까지 수도 없이 떼어주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백원짜리 공사에 실제로 드는 비용은 십원밖에 안된다는 것도 널리 유포된 상식이다. 이건 물론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유언비어라고만도 할 수도 없는 게, 국민의 세금을 얼마나 만만히 보고 온갖 구실을 붙여 떼어먹는데 이골이 났으면, 구차하게 구실을 붙일 것도 없이 무쪽같이 떼어먹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하는 것을 인천북구청 세무비리 사건으로 보아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먼저 무너진 다리가 성수대교일뿐 무너질 요인을 가진 다리나 굴, 심지어 아파트까지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세금을 무쪽같이 떼어먹는 기관이 인천북구청뿐일까 하는 생각도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지울 수 없는 의혹이다.

 이왕 여과되지 않은 유언비어 얘기가 나온 김에 더 나쁜 걸 하나 더 소개하자면, 열다섯 개의 한강다리중 가장 안전한 다리는 일제시대에 건설한 다리라는 점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그 첫번째 한강다리는 6·25때 폭파되어 몇년간이나 사용불능이었던 다리다. 그후 우리 기술로 복구가 되었건만 그런 생각을 갖는 까닭을 우리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그런 생각 속에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딴 금메달 수가 일본보다 몇개 더 된다고 우리가 아무리 펄쩍펄쩍 뛰면서 의기충천해도 위로받거나 메울 수 없는 우리의 참담한 열등감이 있다.

 나는 이런 열등감이 결코 우리의 과학기술이 뒤진데서 오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정치적인 후진성, 즉 한번도 정부가 해야 할 기본적인 일을 제대로 하는 정부를 가져보지 못한데서 오는 좌절감이 아닐까. 역대 정부가 국민을 소중하고 두렵게 여겨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비롯한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원칙을 저버리고, 뒤로는 어떻게든지 빼돌리는데만, 겉으로는 외화치레와 허례허식에만 흥청망청 써온 것은 분단문제와 정통성문제등 그때그때의 정부가 안고 있는 문제성과도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처음으로 가져보는 문민정부라고 해서 그런 정당한 요구를 하자는 게 아니다. 이제 갈 데까지 갔기 때문이다. 갈 데까지 갔다는 걸 추악한 부실공사와 함께 억울하게 숨져간 순결한 영혼들이 목숨으로 증언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한 국무총리의 사의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석연치 않지만 받아들였다고 해도 석연치 않았을 것이다. 그의 책임도 아니지만 그의 책임이 아닌 것도 아닐 것이다. 이 엄청난 일을 누구에게 책임을 지워도 성이 풀릴 것 같지도 않거니와 그렇게 물러난 전직 고관이 적당한 시기를 봐서 돌고 도는 순환에도 신물이 난다. 갈 데까지 갔다는 것은 겉만 번드르르하고 속은 엉망진창이어서 다만 아직 안 터졌다뿐 미구에 파탄에 이를 소지가 한강다리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각계각층에, 심지어는 우리 서민생활에까지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다.

 미처 피어보지도 못하고 숨져간 꽃다운 영혼들을 진실로 부끄러운 마음으로 애도하며 억장이 무너진 유족에게 삼가 조의를 표한다. <작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