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스티븐 소더버그(박흥진의 명감독열전:5)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스티븐 소더버그(박흥진의 명감독열전:5)

입력
1994.10.17 00:00
0 0

◎거짓으로 가득찬 일상 카메라로 해부/「섹스…」 현대인의 무도덕 진지한 조명/13세때 이미 단편제작… 인생편력 화려 현대는 관계부재의 시대다. 관계가 이루어졌다 해도 많은 경우 허위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사랑이 절대전제이어야 하는 부부나 연인관계에 있어서도 거짓은 일상화하다시피 됐다.

 스티븐 소더버그(31·STEVEN SODERBERGH)가 26세의 젊은 나이에 자신의 한많고 죄많은 과거를 토대로 만든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SEX, LIES, AND VIDEOTAPE·89년)는 성의 기만과 거짓의 보편화 때문에 무기력해진 요즘 우리들의 관계문제와 도덕성에 관한 드라마다. 칸영화제서 대상과 남자주연상(제임스 스페이드)및 국제비평가상을 받았고 아카데미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내용과 기술면에서 모두 아름답고 신선한 이 영화는 발견돼 치유받기를 원하는 현대인의 공허한 마음의 지적도로 섹스의 의미와 구실을 노골적인 섹스신이나 나신보다는 언어에 의해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들의 신세타령식 고백은 관계의 위치를 몰라 몽유하는 모든 우리의 고백이다. 손이나 입술로 보다는 말로 상대방의 마음을 만지면서 숨겨진 성과 자아와 서로를 찾아내고 마침내 감정이 승화하면서 구원받게 된다. 이같은 치유와 구원은 기계인 비디오카메라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인간관계의 진실이 기계에 의해 추출된다는 것은 정말 아이로니컬한 일이다.

 루이지애나주 바톤루지에 9년간 종적이 묘연했던 그레엄(제임스 스페이드)이 변호사인 대학친구 존(피터 갤라거)을 찾아오면서 그레엄과 존 그리고 존의 아내 앤(앤디 맥도웰), 앤의 여동생이자 존의 정부인 신시아(로라 샌 지아코모)등 4명의 인간관계와 내면문제들이 총점검을 받게 된다. 젊은 여피부부 존과 앤은 이미 성관계를 중단한 상태이고 존과 신시아는 섹스로만 맺어진 관계.

 속이 답답해 정신과의사를 찾아다니는 앤과 거짓과 술수로 관계를 맺던 자기 과거에 환멸을 느껴 인간관계를 극소화하면서 비디오필름으로만 여자와 관계하는 존은 모두 성과 관계와 감정의 불감증자들이다. 내면의 소리를 제대로 끄집어내지 못해 『아, 하, 후. 으…』하면서 힘들어한다.

 이렇게 거짓과 섹스로만 이뤄진 관계속에 비밀스럽고 방향감각을 잃은듯한 그레엄이 진실탐구기계인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나타나 앤의 내면에 숨어있는 섹스와 진실을 건드려 깨뜨린다. 그리고 자신도 감정의 불감증에서 깨어난다. 그레엄의 비디오카메라는 보에리즘(VOYERISM:관음증)과 거리감을 상징하는데 무언의 말문을 여는 촉매이기도 하다.

 애틀랜타 태생으로 바톤루지에서 성장한 소더버그는 13세때부터 슈퍼8㎜ 단편필름을 찍으며 독학했다. 17세에 고교를 졸업하고 LA의 친구집 소파에서 자면서 1년반동안 할리우드진출을 시도했으나 좌절, 낙향했다. 비디오게임오락실에서 동전교환원으로 일하며 닥치는대로 읽고 각본을 썼다. 이어 비디오제작사에서 일하며 록밴드 예스의 연주실황을 가족영화로 만든것이 계기가 돼 예스의 장편콘서트영화 「9012 LIVE」를 감독, 그래미상후보에 올랐다.

 소더버그는 23세때 각본료 5천여달러를 챙겨넣고 자기파괴행위에 탐닉했다. 애인과 친구를 속이고 폭음하며 인간을 희롱하는 사악한 자로 전락했다. 제작비 1백20만달러의 「섹스, …」는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8일만에 쓴 것이다(편집도 겸함). 소더버그는 이 영화이후 「카프카」(91년)와 「언덕의 왕」(93년·국내에는 「리틀킹」이라는 제목의 비디오로 출시됐음)을 만들었다. 그는 영화를 만들때 영화 도입부 화면과 포스터의 제목을 소문자로 썼는데 이는 미학적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한다.【미주본사편집국장대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