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나라 젊은이의 동질성과 이질성 나에게는 평소 가지고 있던 개인적인 의문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일본과 미국을 바라보는 한국 젊은이들의 두 가지 시각이었다. 미국문화원이 불타고, 점거되고, 무고한 학생들이 죽어가던 때를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가. 나는 아직까지 그토록 많은 일본의 정부관료가 조선에 대한 일제강점을 정당화하고, 대동아 공영권의 구축은 오히려 「조선」의 근대화를 앞당긴 건설의 대역사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가 하면, 교과서 왜곡은 물론, 남경대학살을 중국의 조작이라고 지금 이 시간에도 외쳐대건만, 우리 젊은이들의 일본을 향한 분노는 미국을 향했던 만큼 크지 않다는 느낌이다.
한국의 대학생에게 있어 도대체 일본은 무엇인가. 그들은 일본을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두 나라의 관계에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가.
이틀간의 「한일학생 심포지엄」을 지켜보면서 내내 떠나지 않았던 의문도 그것이었고, 확인하고 싶었던 것도 그것이었다. 「한국 젊은이에게 있어 일본은 무엇인가」하는 그 의문.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모여 앉아, 양국 사이의 어제와 오늘을 통해 서로의 「이해와 오해」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일의 두 나라가 가야 할 국제화의 길을 통해 「인류보편의 가치」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청중석에서 바라본 그들은 화기애애했고 진지했으며 그리고 젊었다.
인간에게 있어 젊다는 것은 늘 새롭다는 말과 동의어로서의 힘을 가진다. 그러나 새로운 것은 옳고 좋은 것이라는 등식은 있을 수 없다. 이번 심포지엄에 참가한 양국 학생들의 발언에는 미숙함이 적지않게 묻어있었지만 상대방에 대한 편견과 오해의 벽을 극복하려는 노력에서 비록 작지만 발전적인 미래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심포지엄을 지켜보면서 느낀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상대방에 대해 너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일본의 한 발제자는 이태원과 제주도의 골프여행과 불고기를 놀랍게도 한국문화의 상징으로 말했다.「한국에도 독특한 문화가 있는가」라고 묻는 일본 대학생도 있었다. 거기에 맞선 우리 대학생들 가운데 몇몇은 우리쪽에서 부르는 정확한 표현인 「일왕」대신 「천황」으로 호칭하기도 했다. 한일간의 역사에 있어 누가 가해자이며 누가 피해자인지 구분이 모호한 발언을 한 우리 대학생도 있었다. 그 발언을 들으면서 그것을 나무라기에 앞서 오히려 우리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르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간의 만남에서 일본인도 우리와 같은 고민과 문제의식들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하게 되어 기쁘다는 결론을 도출, 그것만이라도 이 심포지엄은 뜻깊은 자리였다.
여전히 한일문제는 원점에 있고, 각론이 없다. 이제는 한국과 일본도 원론이 아닌 각론의 시대로 들어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두 나라 대학생들이 한결같이 말했던, 민간차원의 교류를 확대하고, 서로가 가진 문화의 원형을 이해하려는 작으나마 의미있는 노력들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서 또다른 젊음을 본다. 개인 개인이 서로의 마음을 열고 그것이 이어져서 국가와 민족으로 확대되어가기를 바라는 마음들에 따뜻한 격려를 보내고 싶다. 4백년의 역사를 지닌 일본의 전통연희 「가부키」에는 상당부분 중국 「경극」의 영향이 스며 있다. 문화의 교류란 이런 것이 아닐까.
토론장에서 「일본애들」이라는 표현을 쓴 학생도 있었는데, 이런 「경멸어린 표현」을 고쳐나가는데서부터 진정한 교류의 터전이 만들어 지지 않을까.<소설가>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