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대강건삼랑) 가 금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샘은 나지만 일단 축하할 일이다. 일본작가로서는 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천단강성)에 이어 두번째이고 아시아인으로는 인도의 타고르(1913년)까지 포함해 세번째이다. 가와바타가 일본의 향토어린 민족작가라고 한다면 오에는 현대의 불안한 인간성 표현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투쟁과 전쟁, 핵, 권력과 민족차별문제에 이르기까지 21세기적 상황을 투시하는 세계적 안목을 지녀서 더 호감이 간다.
기형아로 태어난 자기 아들로 인해 깊이 고뇌하고 그것을 장편소설 「개인적 체험」으로 형상화한 인간적인 면이 아픈 공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실존주의적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훌륭한 작가들이 축적해온 일본문학의 힘 덕분에 이 큰 상을 탄 것같다. 이번 수상이 한국 중국 등 아시아문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겸손해 했다.
겸손은 일본문학의 뿌리와 층이 두텁다는 간접표현일 것이고 아시아문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말은 그들의 문학이 앞서 있다는 자부처럼 들린다. 적어도 일본작가가 상을 탔기 때문에 한국이나 중국의 작가가 가까운 시일 안에 이 상을 타기는 더 힘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강대국 편향」에 「제3세계 안배」에까지 신경을 쓰는 스웨덴 한림원의 행태를 보면 거의 확실하다.
노벨문학상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사랑을 받는다. 과학과 경제발전의 안목에서 보면 물리·화학·의학상과 경제학상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확실하다. 그러나 감성이 강한 국민과 문학도가 넘쳐나는 우리나라에서는 문학상이 주는 영향이 훨씬 크고 넓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우리에겐 수상자가 없다. 이상하다고 할 수도 있다. 1백여년의 험난한 근세사와 아름다운 한글이 직조해낸 문학의 양과 깊이가 상당한데도 그러하다.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중에는 번역작업의 낮은 수준과 한국문학 자체의 발전이 거론된다. 그러나 먼저 한림원측의 아시아에 대한 인식부족이 우선 지적돼야 할 것 같다.
아시아의 겨우 세번째 수상자라는 점이 그렇고, 5천년 문학의 보고인 중국이 빠져 있음도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세계경제 15위급의 한국이 노벨문학상에 연연하는 자체가 우습다는 냉소적 반응도 있다.
냉소자들은 역대 수상자 가운데 톨스토이, 졸라, 입센 등 문학사를 빛낸 거장들이 빠져 있는데 비해, 체코의 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84년), 그리스의 오디세우스 엘뤼티스(79년) 등 낮은 수준의 작가가 끼어있음을 잊지 않는다.<문화1부장>문화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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