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에 온 힘과 정성을 쏟으면서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올릴 때 마다 삶의 보람을 느끼던 한 어머니가 딸의 대학원 진학을 단호하게 반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봄 대학졸업예정인 딸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 의논해 왔을 때 벌컥 화를 냈다고 한다. 『대학원은 무슨 대학원이야. 부모가 얼마나 더 너희들 학비를 대야 한다는 거야. 네가 석사·박사가 안되면 몸살이 날 만큼 학구적인 사람이야? 대학졸업 후 진로가 애매하니까 대학원에 가겠다는 모양인데, 그런 말 다시는 하지마라. 빨리 취직을 하든지 시집을 가든지 자립할 생각이나 해…라고 내가 따발총처럼 쏘아대니까 딸애도 깜짝 놀라더라구요. 딸애가 제 방으로 간 후 나는 생각해 봤어요. 애들이 공부하겠다면 무조건 기뻐하던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결론은 나도 이제 지쳤다는 거예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어머니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지치고 말구요. 빨리 가족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죽겠어요. 아이들이 늦게까지 결혼 안하는 것도 화가 나요. 아이들을 결혼시키고 나면 신경 쓸 일이 더 많다고들 하지만, 우선 좀 아이들을 떠나 보내고 싶어요. 아이들을 떠나 보내고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라고 미리 걱정할 정도로 나는 애들을 유난히 사랑했는데, 이렇게 마음이 달라지다니 참 이상하죠』
『남편이나 애들은 엄마도 가족을 사랑하는 일에 지칠 수 있고, 엄마만의 감정세계가 있다는 걸 몰라요. 엄마는 가족들 일로만 기뻐하고 슬퍼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믿고 있죠. 얼마전 인생이 왜 이렇게 허무할까 라고 한숨을 쉬었더니 남편은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묻고, 아이들은 아버지가 섭섭하게 했느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도 엄마 일로 허무해 할 능력이 있으니 만사를 가족과 연결시키지 말라고 화를 냈지요. 그랬더니 모두들 엄마가 이상해졌다는 거예요』
50대 전후인 그들은 엄마의 역할에 한없이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가정풍토에 뒤늦게 반발하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힘이 넘쳐서 기꺼이 가족을 위해 희생했으나, 이제는 그렇게 못하겠다고 그들은 화내고 있다.
사추기라고도 하고, 갱년기라고도 하는 이 나이에는 남자들도 대부분 행복한 상황이 아니고, 그 불만을 아내에게 쏟아 아내를 더욱 힘들게 하기도 한다. 『엄마도 지쳤다』라는 말이 엄마의 입에서 나오면 모든 가족이 긴장해야 한다. 가족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는 엄마의 말, 엄마도 엄마만의 세계가 있다는 선언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가족중에서 가장 늦게 불평하는 사람인 엄마가 드디어 불평하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심각한 신호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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