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대지인 라틴 아메리카에서 정치는 나누어 먹기식의 잔치였다. 정치인이 무역장벽을 설치하고 갖가지 이권을 대량 생산해내면 사회 각계각층은 선거에서의 지지를 약속하는 대가로 정부이권을 불하받아 자신의 생산성과 상관없이 안락한 과소비의 삶을 누렸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정치의 기본 목적과 의미를 논쟁에 부쳐보는 선거가 한창이고 개방과 개혁의 기치 아래 정부의 권한과 역할 및 기구를 축소하는 실험이 빈번하다. 국가재정을 악화시키고 시장을 파괴하는 김권정치로는 무한경쟁의 국제화 시대를 헤쳐나갈 길이 없다는 상황판단이다.
역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인가 보다. 재정팽창의 폐해를 경험하면서 일어난 사고의 전환은 칠레에서 시작되었고 나프타를 창설한 멕시코에서 한 단계 더 높여졌다.
그리고 이제는 브라질의 차례다. 지난 주에 치러진 총선은 몇 가지 색다른 기록을 세우면서 과거와는 조금 다른 미래의 도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1차 투표에서 차기 대권의 주인이 결정난 것 자체가 정치적 이변이고 대통령 당선자의 성품 역시 정열의 나라 브라질과는 어울리지 않는 학자풍이다. 당선자는 선동에 능숙지 않은 단조로운 회색 빛의 정치인이다. 게다가 선거 직전의 재무장관 시절에는 경제적 선심공세에 나서기보다 화폐개혁을 밀어붙이면서 재정긴축의 고통을 몰고온 사람이다.
그런데도 절대 다수의 국민은 카르도소를 선택했다. 물가상승의 폭이 한자리 수로 떨어진 덕분이었다. 거기서 국민은 목전의 사적 이익 중 일부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삶을 향상시킬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한편 브라질은 내년에 주변 3개국과 남미공동시장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이 나라의 미래가 과거와는 조금 다를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관세라는 국경이 무너져 시장경쟁이 치열해지면 물가안정과 재정긴축은 더욱 더 절박한 과제로 부상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긴축은 민영화와 세제개편을 촉진시켜 수많은 먹이사슬 중 몇 개를 잘라버릴 것이다.
사실 무역개방을 가속화시켜 재정부문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경제구조를 개혁한다는 전략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이미 실험단계를 넘어선지 오래다. 1991년 이후로 7개 국가가 쌍무조약을 체결하면서 관세를 경쟁적으로 인하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개방의 바람은 즉각 한 단계 더 확대되어 서너 국가 이상이 참여하는 공동시장을 잇따라 4개나 낳았다.
개방과 개혁이라는 공통의 시대적 과제를 짊어진 한국으로서는 지나쳐버릴 수 없는 변화의 바람이다. 인천 북구청과 지존파 사건의 충격에 정신을 잃고 장교탈영의 소식에 맥빠진 한국에서 절실한 것은 자신감을 회복하고 실종위기에 처한 개방과 개혁의 정치를 「우리식」으로 연계시켜 다시 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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