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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찬 최근작 장편 「광야에 눕다」(문학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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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찬 최근작 장편 「광야에 눕다」(문학살롱)

입력
199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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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 맹목성 집요한 추적/스턴트맨 익명의 삶·허망한 죽음 그려/“잊혀지는 것은 슬픈일” 상징적 형상화 젊은 소설가 김재찬씨(35)가 최근 발표한 장편소설 「광야에 눕다」(버팀목간)는 스턴트맨의 극적인 익명의 삶과 허망한 죽음을 다루고 있다. 이런 이채로운 소재를 통해 그는 위험수준에 오른 물질문명의 맹목성과 인간 인식의 불확실성을 끈질기게 반추하고 있다.

 소설의 소재는 92년 10월 드라마 촬영 도중 사고로 숨진 최고의 스턴트맨 정사용씨다. 작가는 스턴트맨인 후영과 그의 동료들, 간호사인 세진의 가족, 치과원장 부부등을 통해 일상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기억과 망각의 복잡한 미로를 섬세하게 살핀다.

 논산의 한 동네에서 어렵게 자란 후영은 군대제대후 스턴트맨의 길로 접어든다. 후영과 한동네에 살며 서로 좋아하던 장군의 딸 세진은 서울에서 치과 간호사로 취직해 우연히 후영을 다시 만나 사랑을 나눈다. 세진은 치과원장의 동생에게 프로포즈를 받아 마음이 흔들리는데 후영은 스턴트 연기에서 죽음을 당한다.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여러 형태의 망각에는 「주체적인 삶의 실현이 과연 가능한 것이냐」는 근본적이고 고전적인 철학문제가 겹쳐 있는데, 이는 영화의 스태프와 배우이름 소개에서만 존재하는 스턴트맨 후영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그의 마지막 연기는 ng였다>   후영은 대역으로 자동차 사고장면을 찍다가 축 늘어져 끌어내려진 순간에 그가 주어진 각본 아래서, 그리고 남의 이름과 얼굴안에서 살아온 사람만이 아님을 증명할 뿐이다.

 또 『밖의 사람들이 아무리 분주하게 움직일지라도, 설혹 아귀다툼을 벌일지라도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보면 한가할 뿐』이라고 독백하는 세진에게는 과거와 현재의 생활이 모두 객관적인 사실이어서 자연스럽게 잊혀지는 대상으로 그려진다. 세진은 어느 순간 지나온 자신의 삶이 습관과 버릇의 연속이었을 뿐이라는 점을 깨닫고 사랑의 감정과 사랑행위의 기억마저 지우려 한다.

 권력투쟁에서 희생돼 장군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된 세진의 아버지는 화려한 과거를 간직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어서 술에 의존해 고통을 잊으려 한다.

 작가는 시종일관 후영의 튼튼한 근육을 통해 육체의 생명력을 예찬하고 있다. 『목숨 걸고 한번 뛰어내리는데 80만원…』이라는 후영에게 몸은 가치의 근본이다. 그는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은 죽음보다도 슬픈 일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글 쓴 동기를 밝혔다.

 뇌성마비자이기도 한 김씨는 9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됐다. 고교 때 시집을 내기도 한 그는 87년 「문학정신」에 장편소설 「비어 있는 오후」가 당선되는등 창작활동에 전념해왔다.

【김병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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