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 파헤친 “사회고발”/「흑과 백」선 감동적인 인종화해 그려/“사회문제 강한 집착 재미반감” 혹평도 스탠리 크레이머(81·STANLEY KRAMER)는 영화를 세상변화의 성경으로 생각했던 메시지필름의 신봉자였다. 어떻게나 메시지를 좋아했는지 메시지 살리느라 영화제작의 많은 다른 측면을 희생시켜 비평가들의 성토도 많이 받았다.
유명한 영화평론가 데이비드 덴비는 『크레이머의 야망과 실패는 종종 그의 흐리멍텅하고 기회주의적인 자유주의로부터 기인한다』고 쏘아붙였을 정도다. 크레이머는 이렇게 진지성이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경박한 할리우드에서의 그의 진지성 하나만은 독보적인 것이었다.
제작자로 출발한 그는 첫영화 「용사의 고향」(49년)에서부터 인종차별반대메시지를 실었다. 이 메시지는 크레이머가 제작·감독한 「흑과 백」(59년)과 스펜서 트레이시의 유작 「초대받지않은 손님」(61년)등에서 계속 전달된다. 말론 브랜도의 데뷔작 「남자들」(50년·제작만 담당)에서는 신체부자유자들의 고뇌를, 올스타캐스트의 「그날이 오면」(59년·제작 감독)과 「뉴렘버그의 재판」(61년·제작 감독)에서는 각기 핵의 재앙과 파시즘의 만행을 메시지로 내보냈다.
크레이머의 많은 메시지필름중에서 메시지와 재미를 동시에 제공해 주는 것이 흑과 백의 두 죄수를 쇠사슬이라는 공동의 운명으로 묶어놓고 자유를 찾아 도주하게 한 「흑과 백」(THE DEFIANT ONES)이다. 대작보다 소품에 능했던 크레이머의 기민한 연출력이 만개한 감동적인 작품이다.
들을 넘고 강을 건너 개구리를 잡아먹으면서 헉헉대며 달아나는 흑인죄수 노아(시드니 포이티에)와 백인죄수 존(토니 커티스)의 필사의 도주와 법집행자들의 추적이 교차되면서 조성되는 한껏 당겨진 긴장감과 박력있는 액션과 함께 증오와 편견과 형제애 그리고 가혹한 미 형벌제도가 두루 고찰되고 또 비판되고 있다. 노아와 존은 샴쌍둥이 신세인데도 증오감을 못이겨 도망하면서도 자유로운 한 손을 사용해 서로를 마구 두들겨패는데 그런 모습이 마치 살의에 찬 짐승들 같아 어리석고 우습기까지하다.
잊지못할 장면은 달리는 화물열차에 먼저 올라탄 노아가 안간힘을 쓰며 뒤따라 달려오는 존의 내뻗은 손을 잡으려고 팔을 내뻗을대로 내뻗다 기차밖으로 굴러 떨어지는 장면. 노아는 존이 보여준 형제애를 간직하기위해 자기 자유를 포기한 것으로 결국 둘을 구속했던 쇠사슬은 흑백통합의 이음쇠가 된다. 노아가 지쳐 쓰러진 존을 자기품에 안고 『롱 곤…』하며 곡하듯 노래부르는 라스트신은 콧등이 시큰해 들어오는 추억의 장면이다. 아카데미영화제에서 각본상(네이산 E 더글러스와 헤럴드 J 스미스)과 촬영상(샘 레비트)을 받았으며 커티스와 포이티에는 나란히 주연상후보에 올랐다(포이티에는 이 영화로 베를린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 절정기를 맞았던 크레이머는 일찌감치 독립제작자로 할리우드체제에 도전한 개혁자였다. 2차대전후 자신이 만든 제작사 「스크린 플레이스」와 콜럼비아사가 고용계약을 맺은 뒤 계약이 끝난 54년까지 「검객시라노」 「세일즈맨의 죽음」 「하이눈」 「케인호의 반란」 「난폭자」등 여러 명작을 제작해 후에 설교조의 감독보다는 제작자로서의 업적을 더 인정받기도 했다.
크레이머도 자신의 큰 사회문제에 대한 집착의 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나도 단순하면서도 예술적으로 이야기를 화면에 표현하고 싶다』고 털어놨었다. 양질의 영화를 많이 만들어 61년 아카데미특별상인 어빙 탈버그상을 받은 크레이머는 79년 졸작 「비틀거리는 주자」를 마지막으로 은퇴,시애틀로 올라가 교편을 잡았다.【미주본사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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