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 중심가의 행인들은 하나같이 빨리 걷는다. 넥타이를 매거나 정장을 한 남녀 직장인들일수록 걸음걸이의 속도는 더 빠르다. 그저 바삐 걷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빠르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여성들의 경우 아예 하이힐보다 운동화를 신은 경우도 많다. 표정역시 걸음걸이에 어울리게 굳어있다. 눈을 부릅뜬 모습들이다. 눈이 움푹 들어간 서양인들이라 부릅뜬 느낌을 더 준다. 대도시의 상업중심가가 으레 그렇게 마련이라고 한다면 맨해튼의 경우는 가장 「전형적」이라고 할 만하다. 이곳을 잘 아는 여러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대답은 거의 똑같다. 극심한 경쟁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긴장이 「습관화」했다는 얘기다. 세계적 일류기업 금융기관들이 많이 모여 있고 이들이 벌여야 하는 세계적 경쟁이 우선 그렇다는 것. 또 이런 곳일수록 실적만이 통하는 직장풍토로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산다는 설명이다. 해고는 상사의 전유물이라는 것이다.
차가운 거리 풍경과는 달리 미국경제의 현 주소를 말해주는 지난 9월의 각종 경제지표들은 대부분 강세다. 자동차판매 7.4%, 주택판매 9.7%, 공장생산주문 4.4%등 모두 전달에 비해 늘어난 수치들이다. 2·4분기 실질경제성장률은 4.1%로 인플레억제를 위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설정한 연간 3% 이내 성장률목표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플레에 대한 염려역시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미국경제는 지난 70년대 불과 3년 사이 인플레율이 거의 3배로 치솟았던 기억을 갖고 있는데 최근 몇개월들어 고인플레가 다가오고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진 게 사실이다. 경기호조에 따른 인플레논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FRB가 다시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분석이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경제전망의 다른 한편에서는 유수기업들의 감원바람이 잦아들 날이 없는 모습이다. 기업의 감원은 짧게는 비용절감을 위한 것이고, 길게는 더욱 치열해지는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리스트럭처링(RESTRUCTURING:구조개편)의 전형적인 단면이다. 경기호조와 감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기업들의 피나는 생존노력이 경기를 살리고 있고 그 그늘이 감원인 셈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군수산업체인 노스롭 그루만사의 18% 감축계획. 냉전종식 이후 방위산업계의 쇠퇴를 감안하더라도 내년까지 무려 8천6백50여명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그루만사의 감원계획은 회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와 뉴욕 롱아일랜드지역을 흔들만했다. 또 아메리칸 에어라인항공은 5백50명의 공항근무 종업원을 해고하고 계약직을 뽑을 예정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자동차회사의 빅3중 하나인 GM은 지난 달 비용절감을 위해 미시간주 플린트의 부품공장근로자 대규모 감원을 선언했다가 파업의 몸살을 겪기도 했다.
미국의 직장인들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점을 항상 느끼는 듯하다. 특히 맨해튼 직장인들의 표정이 굳어있는 이유의 일단은 경제수치 한 가지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5월까지 1년간 뉴욕주의 일자리 증가율은 불과 0.8%였다. 미국 51개주 가운데 46위 수준이다.【뉴욕=조재용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