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과 남아공에 이어 이번에는 아일랜드 차례다. 아일랜드공화군(IRA)이 지난 8월말 휴전을 선언, 피로 물든 북아일랜드사태의 평화적 해결가능성을 열었다. 휴전선언 이후 5주일여를 되돌아 보면 각 분쟁당사자들은 다음 세대에 물려줄 가장 큰 선물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 서로 다른 이해를 조화시킨 정치체제를 만들어내는 것임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가장 큰 장애물은 IRA의 휴전선언이 「영구휴전」을 뜻하는지 여부등 「단어의 해석」에 집착해온 영국정부였다. 그러나 영국정부도 이제 북아일랜드의 평화흐름에 적극 동참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존 메이저 영국총리는 지난 달말에야 이같은 어구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올바른 태도다. IRA의 선언은 아일랜드정부와 유럽연합(EU), 미국의 앨 고어 부통령, 아일랜드 민족주의지도자인 존 흄, 그리고 북아일랜드 민족주의지도자들에게도 가감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IRA는 영국정부가 북아일랜드에서 군사작전을 영구중지하거나 혹은 일시적으로나마 중단한다는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지만 휴전선언을 깨뜨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영국은 중무장한 3만여명의 영국기갑병력과 경찰병력을 동원, 벨파스트거리를 순찰하고 외곽지대를 장악하고 있다.
IRA는 특히 거듭되는 신교계 자살특공대의 도발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 9월말에는 신교계 무장단체인 아일랜드방어연합 산하 무장요원들이 서벨파스트에서 가톨릭계 카페에 총격을 가해 11명을 살해했다. 이 사건은 거의 학살극에 가까웠다.
이같은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북아일랜드분쟁의 모든 당사자들이 IRA의 제안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아일랜드에 평화를 심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는데 동의한다면 모든 정파가 참여하는 평화회담을 미룰 이유가 없지 않은가.
메이저총리는 크리스마스 이전에 신페인당과 협상을 시작하는 방안을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왜 이를 거부하는가. 영국정부는 평화의 기운이 생겨나지도 않던 지난 겨울까지 무려 3년 동안 신페인당과 비밀회담을 해왔다. 그런데 왜 메이저총리는 신페인당과 얼굴을 맞대기를 거부하는가. 메이저총리는 당내의 여러 우려를 제쳐놓고 이번 기회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에 대해서도 평화협상이 지금이라도 시작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물론 영국정부는 「시간게임」을 벌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 게임」이 평화정착 과정 그 자체에 나쁜 영향을 끼쳐서는 안된다.
특히 영국은 분쟁당사자의 어느 일방이 미행정부나 행정부인사들에게 접근하는 길을 통제하거나 막아서는 안된다. 그렇게 할 경우 IRA의 휴전이나 평화정착의 전망이 흐려진다.
빌 클린턴대통령과 앨 고어부통령, 앤터니 레이크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등은 최근 지난 25년간 계속됐던 신페인당과의 접촉금지조치를 해제했다. 이 해제조치는 북아일랜드의 평화일정을 앞당기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 2월 필자의 미국방문을 허용함으로써 IRA가 휴전을 선언할 수 있는 주변 여건을 만들었다. 또 미국거주 아일랜드인 평화대표단이 지난 달 벨파스트를 방문했다.
신페인당은 영국정부나 아일랜드정부에 특별한 대우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선거에서나 정당활동에서 다른 정당이 누리고 있는 것과 같은 권한의 인정을 원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정당이 그러하듯 우리의 주장과 관점을 민주적인 방식에 의해 제기하고 관철하고자 한다. 우리가 바라는 평화협상의 목적은 바로 이것이다.
아일랜드 사회민주당의 흄당수와 노동당, 신페인당측은 아일랜드가 민족자결권을 갖고 있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자결권을 구사하는 방법, 예컨대 아일랜드에서 치러진 국민투표 결과를 공동집계할 것인지 아니면 분리집계할 것인지등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이것은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다. 민족주의자들(가톨릭계)과 통합주의자들(신교계) 간에 반드시 이뤄야 할 합의과제이기 때문이다.
통합론자들이 평화회담에 참여, 평화일정 마련에 동참하는 것이 긴요하다. 우리는 통합론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신교계 주민들은 우리의 평화정착노력에 동참해 줄 것을 촉구한다
넬슨 만델라 남아공대통령은 지난 해 미국을 방문, 『우리는 눈 앞에 있는 도전을 극복해 남아공을 민주적이고 번영되고 평화적인 국가로 만드는 역사적 과업을 이루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북아일랜드도 마찬가지다. 힘을 합치면 북아일랜드에 평화를 심을 수 있다.【정리=이진희기자】<북아일랜드 신페인당 당수>북아일랜드 신페인당 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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