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암흑기때 전유럽을 휩쓸며 인구의 4분의1을 앗아갔던 공포의 흑사병이 오늘에 되살아나고 있다. 또한 「20세기의 천형」이라는 에이즈가 확산일로에 있는가 하면, 소위 「살을 파먹는 박테리아」의 역습공포마저 오늘의 인류는 겪고 경험한 바 있다. 각종 항생제와 유전공학을 이용한 치료제마저 즐비한 첨단과학시대에 이처럼 이미 종적을 감췄던 미생물과 함께 새로운 세균들이 끝없이 생겨나 더욱 극성을 피우는 연유는 뭔가.
국내로 눈을 돌려봐도 우리사회는 지금 또다른 무서운 역습을 끝도 없이 숨가쁘게 당하고만 있다. 비록 인체를 직접 결딴내는 그런 미생물들은 아니라해도 우리 조직사회및 국가적 기능을 파먹고 인륜을 뒤흔들 정도로 핵폭발과 같았던 일련의 충격적 사건 세례를 모두가 정신없이 받아야 했던 것이다.
도대체 모두가 그처럼 고대했던 정통성마저 갖추기에 이른 수준 높은 자유민주사회에서, 지난 2년간 개혁과 사정소리속에서 날이 지새기도 했었는데 어째 그런 고약스러운 일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일까.
살인미생물 역습이 가능한 이유야 과학적으로 이미 답이 나와 있다. 균이나 미생물이 약물에 대해 가지는 저항현상을 일컫는 소위 「내성」 때문이다. 올바른 약제를 투입할 때 대부분의 감성균은 죽지만 그중 한둘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내성을 얻고 그 내성균들이 증식함으로써 사라졌던 역병도 되살아나게 된다는 이치이다.
그 대응책은 충분한 약제의 반복투여와 병용요법시행및 주기적인 감성·내성검사의 철저실시라고 한다. 그래서 일제·이제및 다제로 확대되기 마련인 내성에 대해서는 오히려 이제·삼제및 다다제의 약제로 집요하고 압도적으로 대적할뿐 아니라 정밀검사로 약효를 확인하는등 입체적으로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그런 싸움의 덕으로 사람들의 수명이 오늘처럼 연장될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개혁이나 사정의 시행과정에서도 의당 그런 과학적인 「반복·병용·검사」의 철저한 내성극복원리를 한번쯤이라도 원용했었다면 인천북구청도세사건·「지존파」살인공장만행·장교무장탈영및 장교길들이기 하극상사건등의 역습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 것이다.
집단 도세사건의 경우만 봐도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지방 세정을 감독자가 한번이라도 확인해보는 반복절차와 검사과정 및 담당자를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사원칙이라도 지켰더라면 의당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사건적발은 커녕 표창까지 하는 바보짓만 골라서 했다.
또 지존파사건의 경우는 검사는 커녕 아예 약제조차 쓰지도 않아 일을 키워온 것이나 다름없는 격이었다. 소사장부부 납치나 실습살인 여인의 변사체신고를 경찰이 자작극정도로만 여겨 출동·수사조차 않았으니 하물며 공조수사에의 기대란 애시당초 꿈도 못꿀 일이었다.
「장교길들이기」의 전무후무한 하극상 풍조란것도 사실은 5년여전부터 비롯되어 왔다면서도 근절 대책마련은 고사하고, 그런 일을 알릴 수 있는 언로조차도 막혀 있었음이 지금 생생히 드러나고 있지 않는가. 중대장이 사건확대를 겁내 장교구타를 묵살하는 바람에 두 장교가 자폭적으로 무장탈영을 감행, 그런 폐습을 세상에 폭로하려 했던 것인데, 육군의 군정·군령을 책임진 우리의 수뇌는 『총장 취임후 하극상에 대해 한건도 보고받은 일이 없었다』고까지 「잠꼬대」했다는 게 아니던가.
지금 서울 용산의 우리안보중추가 자리잡은 거리의 초입에서는 「삼각지 로터리」가 헐리고 있다. 한때 서울의 명물이었던 그 로터리가 없어지게 된것은 1차원적인 구태의연한 평면설계가 오히려 교통소통의 방해물로 둔갑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의 로터리 설계개념이란 신호등 없이 직진·좌우회전 및 교행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3층구조의 「풀 인터체인지」단계로까지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군기확립은 물론이고 바야흐로 엄청난 내성의 잇단 역류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우리의 개혁시행도 이제는 헐리는 삼각지 로터리를 보고서라도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한번쯤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실 지금까지의 우리 개혁과 사정은 단번에 곪집과 병소를 뿌리뽑으려는 일방통행의 벼락치기방식으로 진행되어온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 복지불동이나 언로의 막힘등 오히려 엄청난 내성만 키워올 수 있음을 요새들어서야 비로소 우리들은 조금씩 깨우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의 개혁과 사정도 과거처럼 한번 칼질한 뒤 내성만 촉발한채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항상 약제가 반복·병용 투여되어 끊임없이 병소로 흐르고 수시로 확인할 수도 있게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식으로 보다 슬기롭게 진행되어야겠다. 그러고 보면 진정한 개혁이란 단절과 막힘이 아니라 바로 끝없이 흐르는 사통팔달의 「풀인터체인지」여야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한결 분명해지지 않는가.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의 진지한 깨우침과 분발이 정말 아쉬운 때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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