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과의 합의내용/긴 협의끝 백악관 동의”/유람선관광중 미군유해 등 논의/폐연료봉 설명 강석주 이해부족/김,기독교에 우호적… 사냥·낚시광/방북 마친후 일부행동 비판에 놀라○백악관과 협의
저녁식사를 한 후 나는 김일성과의 합의내용을 알리기 위해 로버트 갈루치 국무부차관보에게 전화를 했다. 갈루치차관보는 백악관에서 북핵문제와 관련, 고위급회의가 진행중이라며 나의 보고내용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CNN과의 인터뷰계획을 알렸다. 나는 미국정부의 입장을 고려, 발언을 자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반대하지 않았다.
CNN과 인터뷰가 끝날 즈음 앤터니 레이크 백악관안보담당보좌관이 나와 통화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 마침내 그와 전화연결이 되었다. 나의 몇가지 질문에 대답을 한 뒤 그는 미국정부의 결정을 위해 한 시간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나는 다시 전화를 했다. 그는 다른 나라와 협의할 수 있도록 3시간 가량을 더 달라고 요청했다.
어느덧 시계는 새벽5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백악관측이 내가 제시한 조건들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는 이후 미국측이 제안할 성명내용을 검토했으며 북핵협상에 관한 몇가지 변화에 동의했다. 북한측이 회담을 통해 핵개발계획을 동결할 것이라는 점을 백악관측이 납득한 것이다.
○김일성과 선상회담
다음 날 아침 (한국시간 17일) 우리 일행은 김일성으로부터 유람선관광 제의를 받았다. 장소는 북한군이 건설한 댐으로 바다와 강을 가르는 큰 규모였다.
선상에서 나는 김에게 『우리의 합의가 이행된다는 것은 곧 북한에 대한 국제제재가 중단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또 한국전에서 실종된 미군유해의 송환문제에 관해 논의했다. 북한이 미군유해를 송환하면 미국민들은 이를 크게 우호적인 제스처로 받아들일 것이며 송환문제와 관련해 미국과의 갈등을 빚을 소지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김일성은 부인의 조언을 듣고 나서 북미공동조사단을 구성해 미군유해를 발굴·송환하기로 나와 합의했다.
유람선에서 나는 영변원자로에 사용된 핵연료봉의 재처리 여부에 관해 강석주 외교부부부장과 아주 철저히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나는 북한이 틀림없이 경수로기술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은 핵전문가가 아니어서 연료봉 재처리등에 관한 나의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북한방문기간에 김일성과 나는 남북한관계의 미래에 대해 장시간 의견을 나눴다. 그는 그동안 있었던 남북한회담중 몇몇 사례에 관해 설명하면서 구체적인 성과가 전혀 없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남북한회담이 진전을 보지 못한 데에는 양측 모두에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 책임도 남북한이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영삼대통령이 대통령후보 당시 남북한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에 대해 환영을 표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은 전제조건이나 확대 예비회담없이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91년의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남북군사시설 상호사찰, 92년에 채택된 통일에 관한 기본원칙을 이행하기 위한 후속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또 남북한 양측이 군병력을 단계적으로 감축해 10만명 수준으로 줄이고 주한미군도 같은 비율로 감축하며 비무장지대(DMZ)내 병력과 무기를 남북이 상호 철수하는 방안과 남북이산가족등의 교환방문등을 제안했다.
김일성은 지난 40년간 남북한간에 전혀 진전이 없었다며 카터센터가 남북한간에 현존하는 이견을 해소하는 교량역할을 해서 남북한회담이 성공할 수 있도록 나설 용의가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에게 이 모든 사안들을 서울에 돌아가 김영삼대통령에게 전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일성은 과거 빨치산활동 때 중국에서 일본감옥에 잡혀 있다가 한 목사의 도움을 받아 감옥에서 빠져나온 경험이 있어서인지 기독교에 대해 아주 우호적이었다. 또한 그는 사냥광(그는 지난 1년 곰 2마리와 멧돼지 2백마리를 잡았다고 한다)이며 낚시에도 무척 흥미를 갖고 있다.
그는 45년 광복으로 일본인들이 쫓겨간 후 강가에 사는 주민들이 「일본 물고기」를 잡아 죽이는데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일본 물고기가 1910년 이전에 미국 광산업자에 의해 한국에 퍼진 「무지개 송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북한의 낚시어장 분석을 위해 미국의 생물학자와 낚시꾼을 북한에 보내주기로 그와 합의했다.
우리일행은 평양학생소년궁전을 방문해 어린이들이 보여준 완벽한 기술과 재능의 공연중 하나를 관람한 뒤 마지막으로 잠을 청하기 위해 영빈관으로 향했다.
○평양메시지 전달
다음 날 우리는 비무장지대(DMZ)에 도착해 CNN과 북한 및 중국, 러시아등의 뉴스매체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리고 나서 짐 레이니 주한대사와 함께 서울에 돌아왔는데 여기서 북한에서의 우리 행동이 워싱턴으로부터 부분적으로 비판과 거부감을 샀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나는 앨 고어 부통령과 전화를 통해 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으며 귀국길에 우선 워싱턴에 들러 북한방문결과를 보다 상세히 설명해 주고 싶다고 밝혔다. 나는 북한에서의 내 모든 행동이 클린턴행정부의 정책과 부합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국의 김영삼대통령과 각료들을 만나 평양의 메시지를 건네줬으며 이에 대한 그들의 관심이 지대하고 호의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곧바로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이때 김영삼대통령이 남북한정상회담을 수락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기자들에게 내 능력껏 핵상황을 설명했고 질문에 답했으며 여전히 카터센터를 대표하는 개인자격으로 말하고 있음을 분명히 못박았다.
나는 기자회견 후 곧바로 서울을 떠나 비서인 마리온 크리크모어와 함께 애틀랜타를 경유해 워싱턴으로 갔으며 아내 로절린은 집으로 돌아갔다.【정리=정진석워싱턴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