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종식과 더불어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문제들이 마치 콘도라상자가 열린듯 동시다발적으로 발생, 미국민들에게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뚜렷한 방향도 없이 표류하고 있는 것처럼 비치고 있다. 지역내 강국의 약소국 침략, 민족분규, 인구폭발, 대량 난민사태, 무역분쟁, 그리고 불확실성을 조장하는 정보의 홍수등이 겉으로 드러나는 대표적인 문제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향해 움직이는 진실이 숨어있다. 파시즘과 공산주의에 의해 배척되기도 했지만 아직도 민주주의, 자유, 정치적 다원주의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최고의 가치 혹은 이상을 지켜나가기 위한 몸부림이 배어있다. 지향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이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 기회를 보장하고 부당한 것을 강요하지않는 이른바 「열린사회」다.
열린사회의 적은 분명한 형체가 없다. 극단적인 민족주의자, 부족주의자, 테러주의자, 조직범죄단, 쿠데타세력등은 사악한 정권의 모습을 띠면서 열린사회를 부정하고 과거로의 회귀를 꾀한다.
그러나 세계는 냉전이후 민주주의와 개방경제체제로 나아가는 새 국제질서를 정립할 수 있는 호기를 맞고있는 게 분명하다. 우리는 민주주의 확산을 「이상적인 것」으로만 여길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득이 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민주주의의 실현은 시장경제체제 확산과 이에 따른 교역파트너 증대로 경제적 실익을 안겨주는 것이다.
미국정부가 민주주의 번영의 기초를 닦는데 적합한 안보및 경제기구를 만들어가는 출발은 대체로 좋았다. 유럽대륙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클린턴미대통령의 구상대로 평화유지및 위기대처를 위한 공동의 신속대처군으로 바꾸었고 동유럽국가들과는 「평화를 위한 동반자관계」를 구축, 안보 우산을 동유럽으로 넓혔다.
더욱이 미국은 국민들에게 경제적 실익을 안겨주기 위한 새 경제질서의 터를 닦았다.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간에 괄목할 만한 상품및 서비스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을 창설했으며 아시아태평양공동체(APEC)를 추진하고 있으며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교역질서를 만들고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을 끝냈다.
하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많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외교력과 이를 뒷받침할 힘을 필요로 한다.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외교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평화는 외교력만으로 지켜지는게 아니고 힘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러한 논리는 아이티사태에서 입증됐다. 미국은 힘을 배경으로 한 외교로 아이티사태를 처리했다. 아이티 군사정권도 미군주도의 다국적군이라는 힘에 밀려 협상에 응했고 결국 퇴진을 약속했다. 미국은 지난 3년동안 끌어온 아이티위기를 별다른 유혈충돌없이 넘기고 민선정부의 복귀를 위한 작업을 매듭지어가고 있다.
보스니아사태의 진전도 힘이 외교력과 결부됨으로써 가능했다. 나토의 공습이라는 최후통첩은 크로아티아측과 회교도간의 연방제합의를 이끌어냈으며 세르비아에 대한 무력시위는 세르비아가 보스니아내 세르비아인지역과의 국경을 폐쇄하는 결과를 낳았다. 서방진영은 지금 이러한 여세를 몰아 세르비아측에 새로운 국제평화안을 수락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보스니아사태와 같은 뿌리깊은 분쟁은 어느 한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미국은 르완다와 소말리아에 개입했으며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숨통을 터주었다. 차후의 일은 그들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세계는 이란 이라크 리비아와 같이 테러를 지원하고 대량살상 무기를 거래하며 열린사회를 위협하는 불순한 정권에도 대처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수많은 전선에서 다양한 적들과 싸워야하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자유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정책의 우유부단함이라기 보다는 자유 민주주의를 향한 대장정의 한 과정이다.【정리=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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