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적부터 존재하여 몇세기에 한번씩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페스트(흑사병)가 다시 인도에서 동·서진하여 중국과 독일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이 역질은 성경이나 일리아스등의 문학작품에도 반영돼 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LA PESTE)도 그 하나다. 페스트가 휩쓴 알제리의 한 도시를 무대로 주민들의 절망과 그 극복 노력을 아름답게 그린 이 소설은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은 연대함으로써만이 불행을 물리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은 91년 아르헨티나의 마리오 푸엔소감독이 영화화에 착수하기도 했다. 푸엔소는 『우리가 페스트에서 꺼낼 수 있는 것은 도덕적 파탄과 가치상실, 사회적 폭력등 한마디로 병들고 와해된 사회로서, 혼자서는 여기에서 도피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페스트의 현대적 해석은 에이즈나 사회의 부패, 빈부격차, 인종갈등의 우의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페스트의 창궐위험을 보면서 기자는 「페스트」가 오늘의 한국에 던지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요즘 온 나라는 인천북구청 세금도둑질과 자칭 지존파사건으로 연일 떠들썩하다. 세도에 대해 독자들은 격분하고 탄식하면서 「개혁의지는 어디로 갔는가」 「공무원부정 근절대책을 세우라」고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빈 부대는 서지 않는다. 처우를 개선하라. 부정공무원은 극소수이고 대다수는 선량하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봉급은 결코 적지 않다. 공무원의 종신신분보장을 말라. 터진 것은 일부일 뿐 부정이 많다」는 비관론도 있다. 범죄의 흉악화문제도 이에 못지않게 지적된다.
결국 새벽길 택시에 치인 여인의 전대에서 흘러나오는 2백여만원의 돈을 줍기 위해 혈안이 됐던 사람들(그중 한명은 뭣도 모르고 주웠다면서 신고하기도 했지만)과 함께, 죽여야 직성이 풀린다는 지존파와 어느 보조택시운전사의 「인간상실」이 연대성을 잃고 모래알같이 흩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물론 착한 사람이 더 많으며 이것은 국지적 현상이라고 축소해 자위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얼마를 더 타락해야 한다는 말인가.
중세의 페스트는 전쟁과 함께 큰 인명손실을 끼쳤다. 1346년 인도에서 발생한 페스트는 유럽에 번져 7년간 유럽인구의 ¼∼½인 2천5백만명이상을 희생시켰다. 그리고도 3세기나 계속됐다. 이제 페스트의 치사율은 항생제등 현대의학의 발달과 환자 조기발견으로 훨씬 낮출수 있게 됐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번져가는 무관심, 이기주의, 증오와 질시, 향락의 역질은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사정인가 사회기강확립인가.<여론독자부장>여론독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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