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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가족기업의 명과암(월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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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가족기업의 명과암(월드포커스)

입력
1994.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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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유연성 등 경쟁력은 높지만/소유주 승계·재원조달엔 어려움 유럽에서 가족기업이 융성하게 된 것은 2차대전후 유럽 각국이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면서 고용주들의 세금부담이 커진 점을 우선 꼽을 수 있다.

 「가족기업」의 왕국인 이탈리아에서 직원 1명을 고용할 경우 고용주가 부담해야 하는 총경비는 직원의 순수령액의 2.6배에 달한다. 연봉 9천만리라(약 4천5백만원)를 받는 직원의 실수령액은 개인이 부담하는 사회보장세와 소득세등을 공제하고 5천1백50만리라 정도지만 회사는 회사가 납부해야하는 사회보장세와 퇴직연금 예치금등을 합해 연간 1억3천4백50만리라를 부담해야 한다. 게다가 노동조합이 강해 한번 고용한 직원을 감원하기도 어려워 자연히 직계가족이나 친척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가족기업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스위스 로잔의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은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등 서유럽 12개 국가의 국내총생산(GDP)과 고용의 3분의 2를 가족기업이 창출하고 있다」고 추산할 만큼 유럽에서 가족기업은 번창하고 있다.

 그러나 가족기업은 밝은 면과 아울러 어두운 면을 함께 지니고 있다. 많은 가족기업들이 특유의 창조성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지만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 또한 적지 않다.

 가족기업의 아킬레스건은 소유권 이전. 몇 대에 걸쳐 탄탄히 뿌리를 내린 기업들은 문제가 없으나 2차대전 이후 창업돼 창업주의 은퇴를 앞둔 가족기업들은 상당수가 대물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위스은행 집계에 의하면 93년말 현재 스위스의 가족기업 5개사 중 1개사가 소유권 이전에 문제가 생겨 대물림이 불투명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자금압박도 소규모 가족기업을 괴롭히는 요인이다. 소규모 가족기업들은 대기업에 비해 은행대출을 받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증권시장 상장을 통해 자금을 끌어모으기도 어렵다. 가족·친지간의 주식소유관계가 워낙 복잡해 증권시장에 상장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때문에  2차대전 이후 유럽 각국에서 창업된 가족기업 대다수가 5년을 넘기지 못한채 문을 닫았고 살아남은 기업중 30% 정도만이 다음세대로 대물림을 했으며 이중 3대째 가업을 잇는데 성공한 기업은 10%에 불과한 것으로 IMD는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이런 난관을 극복한 가족기업은 거대한 경제력을 발휘한다. 몇 세대에 걸쳐 축적한 노하우와 명성, 철저한 소명의식과 장기적 안목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가장 큰 자산으로 삼는 유럽의 가족기업들은 특히 패션 가구 공예등 소비자의 기호가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눈부신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처럼 탄탄한 유럽의 가족기업들에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가 아시아기업들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이탈리아은행의 조사에 의하면 이탈리아의 가족기업중 35%가 아시아기업들의 도전을 뿌리치고 자기분야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동종기업끼리 합병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도 고유의 장인정신과 가족간의 강한 유대관계를 창조적인 기업가정신과 연결시킬 수만 있다면 유럽시장의 두꺼운 벽은 의외로 쉽게 공략될 수 있을 것이다.【로잔=송용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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