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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나면 실종자… 실태와 문제점/수사의지·능력도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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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나면 실종자… 실태와 문제점/수사의지·능력도 “실종”

입력
1994.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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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가출 간주·축소급급/뒷북치기로 피해 “눈덩이” 실종된 후 끔찍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실종사건을 다루는 경찰의 수사의지와 능력마저 「실종」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재 경찰은 실종자 발생신고가 접수될 경우 즉시 전국에 동시 수배, 공조수사를 펼 수 있는 실종자수배 전산체계를 갖추고 있다. 또 일선 경찰서에는 방범과 안에 「가출인 신고센터」를 별도 설치, 실종·가출자에 대한 기초적 수사를 하고 있다.

 실종·가출자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은 우선적으로 일선 경찰서 및 파출소와 연결된 경찰청의 182신고센터에 인적사항을 입력시킨다. 이중 피해자 주변의견과 정황조사를 통해 단순가출이 아닌 실종·납치의 가능성이 높을 경우에만 경찰서 소년계나 형사계로 인계되어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다.

 그러나 경찰은 일단 실종·가출신고를 받으면 대부분 1∼2주일을 기다렸다가 전국적인 수배지시를 내리는 것이 관례여서 전국규모의 전산수배체계가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실종사건이 신고되면 13세 이하는 「미아」, 14세 이상은 「가출인」으로 무조건 일괄 처리, 대부분의 실종을 「자의에 의한 가출」로 간주하여 처리하는 경우가 많고 수배지시 후 5∼6일이 지나면 대부분 수사를 종결한다.

 실종자 가족들은 한결같이 『경찰에 신고를 해도 당사자나 가정내 문제만 집요하게 부각시켜 「자의에 의한 가출」로 단정한 채 오히려 면박을 주기 일쑤』라며 『그렇지 않은 경우도 「기다려보자」는 식의 무성의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같이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이거나 명백히 형사사건과 연루되지 않으면 대부분의 실종을 단순가출로 처리, 축소하는 수사관행 때문에 실제로 납치·인신매매 가능성이 높은 사건도 시기를 놓치면서 영원한 미제사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91년의 대구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도 가족들은 당초 경찰에 가출신고를 하면서 아이들의 가출동기가 없다며 적극적인 행적수사를 요청했으나 경찰은 『5명이 한꺼번에 납치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외면해오다가 사회적 주목을 받게 되자 뒤늦게 전담반을 구성, 뒷북수사에 나섰다. 또 실종수사는 신고가 접수된 경찰서와 유관사건 발생지 경찰서와의 공조수사가 필수적임에도 이것이 지켜지지 않아 제2, 제3의 범행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이번에 발생한 부녀자 연쇄납치살인사건도 지난 1일 최초의 피해자 권모씨(43)가 전북 김제경찰서에 사건 직후 신고했지만 곧바로 범인을 지명수배하지 않아 그 뒤에도 4건의 피해가 잇따랐다. 당시 김제경찰서는 단독수사를 벌여오다 지난 9일과 12일 가출신고가 접수된 부녀자들의 납치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15일에야 전국적인 범인의 지명수배가 가능했다.

 또 살인조직 지존파 사건의 첫번째 피해자인 최미자양(21)의 경우도 사건발생 이후 최씨의 시신 일부가 현장 주변에서 발견됐으나 경찰측이 단순 행려병자로 처리, 신원확인도 없이 넘어간 것이 밝혀져 당초 실종수사가 제대로 됐으면 커다란 참극을 미리 막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을 남겨주고 있다.

 일선 경찰서의 한 경찰관은 『지난 91년 이후 각 경찰서에 설치한 「가출인 신고센터」의 상주인력이 단 1명 뿐』이라며 『이 인력으론 밀려드는 가출 및 실종사건의 처리는 고사하고 신고접수 기록도 제대로 못하는 실정』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박천호기자】

◎사회심리적 진단/차재호/사회전반 기강해이 산물/범죄모방지나 「학습·조직화」로

 지존파와 온보현은 범행동기를 모두 사회의 탓으로 돌렸다. 불우한 성장과정, 생활배경등으로 볼 때 이들은 소외계층에 속하는 게 사실이며 사회구조 전반과 가진 자에 대해 분노를 느끼게 된 상황논리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온전한 범죄의 동기를 풀이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런 측면이 있다는 정도로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들의 범죄대상이 검거 후의 말처럼 가진 자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이나 중산층이었다는 데서도 말과 행동의 모순이 드러난다.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이번 사건들이 불쑥 일어났다거나 갑자기 생겨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6공 이후 이어지고 있는 사회적 이완현상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본다. 현상적으로 인신매매등 여러 가지 형태의 범죄들이 창궐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6공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군사통치의 형태로 서슬이 퍼렇던 5공정권은 범죄도 줄어들게 한 경직된 사회였지만 6공 이후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민주화등의 요인으로 상당히 풀어진 게 사실이다. 범죄가 자랄 만한 기반과 자양을 제공한 셈이다. 6공 이후 범죄는 효과적인 사회의 제재를 받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고 조금씩 더 흉포화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주목할 점은 범죄의 흉포화가 모방범죄가 아니라 범죄의 학습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모방학습으로 이루어지기에는 범죄의 형태가 조직적이고 계획적이기 때문이다. 개인범죄이면서 조직성 범죄의 양상을 띤 온보현사건도 주변을 통한 학습가능성을 시사해준다. 지금의 범죄는 대중매체에 의한 간접적 모방으로 이루어진다기보다 상당히 두텁게 형성된 주변집단 혹은 또래집단을 통해 구체적인 범행수법을 학습하고 조직화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미 잠재적 범죄집단층이 사회 일각에 형성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사회의 상층구조에서부터 사회 전반의 분위기쇄신을 위한 의지있는 행동이 나오지 않으면 실마리를 풀기 어렵다. 선언적 의미의 도덕회복운동이나 정신무장등은 주변적 처방에 불과할 것이다.<서울대교수·사회심리학>

◎“내딸도 저렇게 당했을까” 걱정/동병상련 실종인 가족협의회/경찰에 기대 포기… 직접 조사나서기도

 최근 살인조직 지존파 사건에 이어 택시부녀자납치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실종자가족 모임인 서울 동대문구 용두2동 전국 실종인가족협의회(회장 유정숙·46) 회원가족들은 연속적인 살인사건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자신들의 딸이나 아들도 살해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24시간 열려 있는 이 협의회의 실종자 신고전화에는 지존파와 부녀자납치 살인사건의 여죄 여부를 묻는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해 6월 서울 강남구에서 실종된 박진숙씨(26·회사원)의 아버지 박영준씨(58·경기 여주군 대신면)는 『요즘에는 내 딸도 저렇게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은 커녕 밥도 넘어가지 않는다』고 한숨을 터뜨렸다. 박씨의 부인은 딸 걱정을 하다 혈압으로 쓰러져 몸져 누운 상태에서도 딸이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씨의 딸처럼 실종인가족협의회에 신고된 실종자는 3백50여명. 이 협의회의 회원들은 경찰에 가족들의 실종사건을 신고했으나 무성의와 냉대를 받아 더 이상의 경찰수사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 채 모인 사람들이다.

 유회장은 『가족이 실종되면 처음엔 경찰에 기대를 걸고 찾아가지만 결국 이 곳에 오게된다』며 『회원가족들은 매일매일을 「혹시나」하면서 가슴 졸이며 살고 있다』고 그들의 아픔을 전했다.

 이 협의회는 유회장이 지난 83년 실종된 동생 재영씨(당시 26세·전남대4)를 찾다가 만난 실종자 80여명의 가족을 모아 서로 위로하고 격려를 위해 91년8월 친목모임으로 만든 것이 모체가 됐다. 지난 해 겨울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 요즈음엔 하루 3∼4명의 신고를 접수하고 있다.

 실종자는 여자의 경우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이 대부분이고 남자는 20대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실종자중엔 벌써 10년이 넘은 경우도 있어 찾기를 포기한 가족들도 있다.

 회원의 수가 늘어나면서 실종사건 수사를 직접 벌여 10여명의 실종자를 찾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가족들만의 힘만으로는 한계에 부닥친다는 것. 이 협의회는 실종자를 찾기 위해 그 동안 전국 곳곳의 복지원 갱생원을 뒤졌고 멍텅구리배에까지도 승선했다. 

 유모씨(43·여)는 지난 91년 서울 동대문구에서 사라진 딸 최창미양(당시 15세·중2)을 찾기 위해 2년 동안이나 전국 윤락가와 병원 영안실을 찾아다닌 끝에 본인이 결국 정신·신체적 고통으로 정신질환까지 앓아 병원치료를 받고 있다.

 유회장은 『온 국민이 내 가족도 언제 어디서 당할지 모른다는 인식을 갖고 실종자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선년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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