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력동원” “핵활동재개” 상호위협/북,폐연료봉 문제등 모면의도/불신감반영… 회담결렬은 불원 제네바의 북미 고위급회담이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윌리엄 페리미국방장관이 「군사력에 의한 강제해결방식」을 주장하고 북한측이 미항모전단의 동해배치를 문제삼아 「핵활동 재개」를 위협하고 나서 양측간에 또다시 긴장감이 일고있다. 페리미국방장관은 25일 『북한이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는 경우 군사력에 의한 강제해결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다』고 강경입장을 밝혀 북핵문제 해결이 멀어지는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워싱턴의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은 양측의 이같은 장외공방이 제네바회담에서의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일 것으로 분석하고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양측이 고위급회담의 결렬을 원치않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배경에 깔고있다. 따라서 이같은 긴장은 오래가지 않을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같은 분석은 북한 외교부대변인의 성명이 「미국내 일부 강경보수세력들」로 비난의 대상을 한정하고 있고 미국도 기존의 대북정책에 아무런 변화가 없음을 재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타당성을 갖고있다. 미국은 그러나 북한이 미국내 일부 대북강경파의 태도를 핑계삼아 제네바의 협상테이블에서 비타협적으로 나올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의 대미 협상중단 위협은 미항모전단의 동해배치에 관한 보도에서 발단이 됐다. 북한은 로널드 즐라토퍼신임미태평양함대사령관이 22일 성조지와의 회견에서 미국이 동해에 키티호크 항모전단을 배치했으며 『이것이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본다』는 발언에 대해 이를 자신들에 대한 군사위협이라며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대해 미국 정부는 즐라토퍼사령관의 발언이 사견에 불과하다면서 급히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즐라토퍼의 발언은 3단계 고위급 2차회담을 하루 앞둔 미묘한 시점에 나온 것으로 의미는 있다고 할수 있다.
하지만 미행정부관리들은 북한이 이를 문제삼아 고위급회담의 거부와 핵활동의 재개를 위협하고 나온 것은 지나친 게 아니냐는 반응이다. 즐라토퍼사령관이 언급한 미항모의 동해배치가 항구적인 것인지 일시적인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미항모의 한반도근해 배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위기사태 발생시나 팀스피리트 훈련때 미항모가 동해로 이동해 작전을 해온 것을 북한도 잘 알고있다. 미관리들은 북한이 이번 제네바회담에서 폐연료봉의 제3국 반출과 특별사찰 수락압력을 모면하고 오히려 대미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기위해 키티호크의 동해배치를 집중 부각시키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있다.
미국내 보수파의 대북 강경입장은 북한측의 지적대로 최근의 아이티사태를 계기로 강화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같은 보수의 목소리도 결코 새삼스러울게 없으며 오는 11월의 중간선거를 앞둔 대외정책 토론과정에서 다소 거세지고 있을 뿐이다. 지난25일 NBC TV의 시사대담 프로에서 페리미국방장관이 북한에 대해 소위 「강제외교(COERCIVE DIPLOMACY)」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클린턴 미행정부의 일관된 대북정책을 되풀이한데 불과하다.
페리장관은 『북한이 폐연료봉의 재처리를 시작하게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느냐』는 사회자의 가상질문을 세차례나 연거푸 받고나서도 즉답을 회피하다가 『그렇게되면 미국이 대화노력과 함께 (군사력이 수반되는)「강제외교」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을것』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강제외교」란 말은 지난 5월말∼6월초 북핵문제로 한반도 상황이 위기로 치닫고 있을 당시 페리장관이 사용하기 시작한 표현이다.
미항모의 동해훈련으로 야기된 북미간의 긴장은 최근의 해빙무드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신뢰의 토대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있다.【워싱턴=이상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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