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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테랑 우울한 집권말년/윌리엄 파프 미 칼럼니스트(해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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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테랑 우울한 집권말년/윌리엄 파프 미 칼럼니스트(해외칼럼)

입력
1994.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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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수아 미테랑프랑스대통령은 지난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동안 개인적인 야심과 샤를 드골전대통령에 대한 라이벌 의식에 사로잡힌 가운데 정치연륜을 쌓아왔다. 미테랑대통령은 드골이 세운 제5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이제 두번째 임기(7년)의 만료를 목전에 두고 있다. 드골은 나이가 워낙 많았던데다 68년 5월에 일어난 대규모 시위의 여파로 첫 임기마저 미처 다 채우지 못하고 69년 사퇴해야만 했었다. 미테랑대통령도 이제 고령이다. 고령일 뿐만 아니라 전립선암으로 건강마저 좋지 않다. 그는 최근 자신의 건강문제에 대해 『내년봄에 이번 임기를 무사히 끝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는 자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작업을 미화하려는 노력마저 좌절돼 더욱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과 전쟁당시의 행적을 담은 한 저서와 관련해 최근 언론사들과 연쇄적으로 인터뷰를 가졌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테랑대통령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명성과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2차대전 당시 나치가 세웠던 「비시(VICHY)」정권과의 관련 여부, 청년시절 우익과의 유대관계, 비시정권 당시 경찰 총수였으며 2차대전 당시 수많은 프랑스인과 유대인들을 나치수용소로 강제 이송시키는등 반인륜적 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83년 기소된 르네 부스케와의 오랜 인연등에 관해 설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인터뷰가 과거 전력에 대해 심문하는 형태로 변하자 미테랑대통령은 자신의 가족관계와 성장과정, 시대적 상황, 사회정의에 대한 일관된 신념등을 언급하며 동정을 호소했다.

 미테랑대통령은 인터뷰 후반에 접어들면서 존경스럽기 보다는 오히려 애처롭게 보였다. 비시정권에 대한 미테랑대통령의 발언은 아직도 애매모호하다. 그는 비시정권의 반유대인법과 유대인 강제퇴거에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모든 유대인을 공무원직에서 쫓아내려는 내용의 반유대인법은 그가 페텡을 위해 일할 당시인 1940년에 처음 제정됐다.

 프랑스의 최대일간지 르몽드는 지난 15일 미테랑이 1942∼43년에 비시정권의 출판물에 게재했던 글들을 토대로 「청년 미테랑」의 정치철학을 분석한 충격적인 기사를 실었다. 미테랑의 글을 분석한 역사학자 크레르 앙드리유는 자료정리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청년 미테랑은 1943년 4월까지 『가장 철저한 페텡의 측근중 하나』였던 것으로 결론내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전후 프랑스의 가치와 인권을 보호하는 정치가로 입신한 미테랑의 이미지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같다.

 그는 항상 드골전대통령을 도전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그는 1943년 알제리에서 드골전대통령과 충돌했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또 그는 전후 정치적 전환기에 드골에 반대입장을 취했고 제 4공화국의 연립내각을 교체시킴으로써 성공적인 정치경력을 쌓았으며 65년에는 드골에 맞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그는 드골의 제5공화국 수립을 『영원한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그에게는 81년과 88년에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곧 드골에 대한 승리이기도 했다.

 역사는 분명 프랑스의 좌익을 현대화시켜 정치의 주류속으로 끌어들인 미테랑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을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궁과 관련된 일련의 재정스캔들로 사회당을 분열시켰을 뿐 아니라 치욕적인 오명을 안겼다.

 역사는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당과 좌익세력을 이용하고 내팽개쳐 버린 인간 미테랑에 대해 모진 평가를 내릴 것이다. 그는 극단적 우익세력이었던 「민족전선」을 간접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주류 우익세력을 약화시키는등 우익에 대해서도 똑같은 행태를 보였다.

 드골은 『프랑스의 이상』을 위해 일할 것이라며 자신이 정당의 개념에서 과감히 탈피할 것을 천명했다. 자유주의 언론인인 장 다니엘은 전쟁당시 『드골은 나에게 자신을 지키며 그대로 남아있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테랑대통령의 충실한 추종자들은 이전에 천명했던 정치적 신념때문에 지금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정리=이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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