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진주 나흘째를 맞은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는 도시 전체가 우중충한 잿빛이어서 외부방문객들은 먼저 암울하다는 첫인상을 받는다. 카터 전미대통령과 아이티 군부실력자 세드라스 장군간의 마라톤 담판이후 이나라 장래에 대한 장밋빛 설계가 나오는듯 했으나 수도의 분위기는 여전히 내일을 예측키 어려운 혼미스러운 양상이다. 지난 20일에는 한 시민이 경찰관의 몽둥이에 맞아 길한가운데서 즉사한 사건이 발생했고 「시테 솔레인」(태양의 도시라는 뜻) 빈민가에는 한밤테러와 약탈이 계속 자행되고 있다.
미화 단돈 5달러(4천원)만 주면 청부살인이 가능한 곳이 바로 포르토프랭스다. 주인없는 배에 탄 주민들은 방향타를 상실한채 그저 카리브해를 표류하고 있을 뿐이다. 「데모크라시 예스, 아리스티드 노」는 구심점 없는 시위군중들이 내뱉는 유일한 구호다. 「통통 마쿠트」라는 비밀경찰의 인간사냥은 인권이라는 단어를 잊게 한지 오래다. 세드라스의 섭정도 따지고보면 아리스티드 전대통령이 그 씨앗을 뿌린 것이라는 이중적인 피해의식이 국민들의 뇌리속에 깊이 박혀있다.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허울좋은 이념도 훌륭한 정치지도자도 아닌 것 같다. 하루 두끼라도 때울 식량이 우선 아쉽다. 미군이 들어와 먹을 것은 물론 휘발유까지 해결해 준다니 무엇보다도 반갑다고 한다.
이곳에선 무산층이 미국편이라고 한다면 유산층은 반아리스티드 그룹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나라의 이른바 엘리트그룹은 이제 더이상 친미주의자들이 아니며 오히려 기층민들이 친미로 돌고있는 역사의 새 기류가 아이티사태의 저변에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2차대전후 영향 있는 국가에 사용해온 토착엘리트를 통한 대리통치방식만으로는 그들의 세계주의를 고수할 수 없다는 심각한 현실인식을 이제 깨달아야 할 것 같다. 포르토프랭스에서 그같은 미국의 고민을 생각해 본다.【포르토프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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