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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자금 모으려/막노동 내핍생활/일당들의 최근 7개월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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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자금 모으려/막노동 내핍생활/일당들의 최근 7개월 행적

입력
1994.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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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서 합숙 “떼돈벌 사업준비”/밤엔 「교육」… 2천만원되자 떠나 살인조직 「지존파」일당은 지난해 11월부터 8개월간 경기 분당 신도시 건축공사장에서 막노동으로 2천만원을 모아 「살인 아지트」 신축자금으로 쓰는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 『떼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준비한다』며 고급 승용차를 탄 사람과 오렌지족등에 강한 적개심을 보여 가공할 범죄행각을 은연중 예고하는 대담성을 보였다.

 김기환(26)등 일당이 범행준비자금을 마련키 위해 일한 곳은 분당신도시 상탑동 모연립주택 신축현장이었다. 이곳은 이들이 소윤오씨부부를 납치한 남서울공원묘지에서 불과 8백거리에 있다. 연립주택공사를 한 강모씨(33)에 의하면 지난해 11월말께 두목 김이 강동은(22)과 문상록(23)을 데리고 찾아와 잡부로 채용해 줄 것을 부탁, 같은 고향출신이고 성실해 보여 일당 6만∼7만원씩에 철근 벽돌등을 나르는 잡역부로 일하도록 했다. 김은 1주일쯤 뒤 『인천에 있는 고향후배』라며 김현양(22) 강문섭(20) 백병옥(20)등 나머지 일당 3명을 데려와 함께 일했다.

 이들 일당은 현장 잡역부숙소에서 합숙을 하며 비가 오는 날도 『돈을 빨리 모아야 한다』며 자청해 일을 해 강씨는 대견하게 여겼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노임을 식비외에는 거의 쓰지 않고 두목 김이 함께 모아 은행에 예금, 주변에는 「성실한 젊은이들」로 비칠 정도였다. 일과후에도 다른 인부들과는 달리 외출조차 하지 않고 가끔 숙소에서 소주 한두병을 사다가 안주도 없이 나눠 마시는 것이 고작이었다. 두목 김은 이같은 생활에 대해 『우리는 큰 사업을 준비하고 있어 2천만원을 모아야 한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김은 이때 이미 엄청난 범행을 꾸미고 있는 것을 시사하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김은 「우리에겐 목표가 있다」 「조직을 이미 구성했다」 「세상을 짧고 굵고 멋있게 살아 보겠다」고 말했으나 강씨는 흔히 하는 얘기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것이다. 김은 『한번 사업을 하면 떼돈을 번다』고 말하다가 강씨가 『그렇게 좋은 사업이 있으면 함께 하자』고 농담을 건네자 『형님은 이런 일 못합니다』고 대꾸한 적도 있었다.

 두목 김은 특히 TV에 압구정동등의 오렌지족이 등장하면 『저놈들 모두 죽여 버리겠다』고 말하는등 강한 적개심을 내보였다. 또 고급 승용차가 지나갈때마다 『우리는 평생 일해도 저런 차 못 타본다』 『저놈들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내뱉곤 했다.

 그러나 이들 일당은 범죄의도를 시사하는 말보다는 특이한 집단행동으로 주목을 끌었다. 두목 김은 일과후면 일당을 모아 놓고 『돈 있는 놈들을 저주해야 한다』는등의 「정신 교육」을 시켰다. 김은 입담이 좋고 저녁마다 암흑가를 다룬 소설 「야인」과 교도소 생활을 그린 「뼁끼통」등을 탐독했다.

 나머지 일당들은 당시 김을 「형」으로 불렀으나 면전에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무슨 말이든 따르는등 주변에서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또 작업용 헬멧에 「지존무상」이란 홍콩 암흑가를 그린 액션영화 제목을 써 붙여 눈길을 끌었다. 자신들만의 은밀한 집단의식을 간직하기 위한 행동이었으나 주변에서 이들의 의도를 눈치챌 수는 없었다.

 이들에게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명절에도 고향에 간다는 말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 3월 두목 김이 일당중 1명을 데리고 『고향의 헌집을 고치러 간다』며 보름정도 공사장을 떠났다. 돌아온 김은 『집을 마련했다』고 강씨에게 말했다. 끔찍한 「살인 아지트」가 완성된 것을 알리는 얘기였으나, 주변에서는 다시 한번 「성실한 젊은이」란 인상을 받았을 뿐이었다.

 지난 6월 연립주택공사가 마무리되자 일당은 남은 임금 6백만원을 한꺼번에 받은 뒤 『우리의 목표가 달성됐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지존파 일당의 1차목표 2천만원이 이들의 최종목표인 10억원을 벌기 위한 가공할 범죄의 준비자금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그들 일당뿐이었다. 범죄행각을 위해 고된 노동과 내핍생활을 인내한 이들의 의식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는지 의문이다.【영광=송두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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