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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잃은 클린턴외교(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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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잃은 클린턴외교(사설)

입력
1994.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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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은 아껴야 한다. 국가의 장래를 짊어진 대통령의 경우는 더 더욱 그러하다. 상황변화에 민감한 것이 여론임을 모른 채 좋은 말만을 찾아 헤매다 보면 대통령 스스로가 자신의 권위를 실추시켜버리고 마는 사태가 벌어진다. 여론정치의 본고장인 미국을 두고 하는 말이다. 클린턴대통령의 외교는 국민적 신망을 잃고 있다. 탈냉전의 시대에 걸맞은 정책이라고 내놓은 것 중 상당수가 실패의 시련을 맞았고 대통령자신의 말을 번복해야 하는 난처한 사태가 줄을 이었다.

 소말리아의 난민을 구한다면서 파병되었던 미군은 인명손실에 놀라 철수해버렸고 인권신장과 연계시켜 최혜국 대우를 연장한다는 정책은 중국의 반발로 단순한 희망사항에 그치고 말았다. 이어 쿠바 공산정권의 얄팍한 생존전략에 맞서 천명한 이민불허의 원칙은 쿠바계 미국인의 항의에 밀려 며칠만에 백지화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티 사태다. 미국의 침공위협에 굴복하여 정치적 망명의 길을 선택한 독재자를 바라보면서 「이제야 클린턴의 체면이 섰다」고 말할 미국인은 많지 않다. 오히려 현지 언론은 힘의 과시에 열광하기 보다 대통령의 판단능력을 의문에 부치는 분위기다.

 문제의 발단은 침공이라는 최후의 수순마저 내비치면서 아이티의 내정에 관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사실에 있었다. 오히려 침공은 문제의 종결이 아니라 시작이었을 것이다.

 군부의 축출로 생겨날 힘의 공백을 다시 메우고 문민정부를 복원하는 것은 순전히 아이티국민의 민주적 역량에 달려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이를 기대한다는 것은 기적을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침공이라는 무리수는 대안일 수 없었다. 오히려 미국은 아이티에 대한 장기점령을 추진하면서 적지 않은 재정적 부담과 인명손실의 위험을 감수하거나 아니면 철수를 단행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했을 것이다. 

 카터전대통령의 중재를 반기고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동의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침공이라는 무리수마저 상정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클린턴대통령은 아이티 민주주의의 편에 서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당위에 밀려 지난 연말에 제한적인 경제제재를 단행했다. 그러고는 제재의 수위를 높여가다가 9월부터 원하지 않는 침공마저 고려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소말리아와 중국·쿠바에서 미국의 역량을 초월하는 공약을 남발하다 자신의 말을 잇따라 번복하게 되면서 공신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미국인은 아이티 사태의 평화적 해결에서 자국의 우월성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공약의 남발로 자신의 공신력이 땅에 떨어진 대통령이 미국 전체의 공신력을 살리겠다고 착각하면서 전쟁마저 모험하다가 카터의 중재로 창피를 모면한 것에 안도하고 있을 뿐이다. 대통령의 말은 아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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